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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52

과메기가 들어 간 도넛 방학동안 제주도에 다녀오신 선생님이 도넛을 사왔다고 드셔보라며 권해주셨다. 마침 일이 바쁘기도 했고, 쉴 새 없이 운행 일정을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던 차에, 이게 웬 떡…아니 웬 도넛이냐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하지만 중고등부 부원장이 도넛 하나 받고 신나서 방방 뛰면 아이들이 무서워 할 것 같아 간신히 기쁨을 감추며 감사한 마음으로 얼른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도넛을 주신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도넛 안에 들어가 있다는 내용물의 정체를 듣자 나는 도넛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어졌다. ‘과, 과메기가 들었다고?‘ 도넛 안에 과메기라니 벌칙인가 싶었지만, 어쩌면 아직 내가 모르는 MZ 세대들의 최신 유행 별미, 혹은 제주에서 핫한 간식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이미 먹어 본.. 2024. 1. 23.
시인은 타고나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아무 흥취나 감흥없는 말로 여기겠지만 ‘시’라는 명칭은 더 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간결하게 한 글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 받침이 없어 발음할 때 깔끔하게 발음할 수 있는 것도 좋다. 더울 때 시원하고, 서늘할 때 따뜻한 느낌이랄까? 마치 별다른 꾸밈 없이도 청초하고 깔끔한 모습이 수수한 매력으로 느껴지는 사람을 만난 것 같다. 지금은 시를 좋아하지만 사실 어릴 땐 시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 지 알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국어나 문학 시간에 배우는 작품들을 공부하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걸 배워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정도로 시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갈래였다. 그러나 40년 넘게 온갖 달고 쓴 인생의 순간을 겪으면서 살다보니, 시를 읽다가 가슴을 찡하고 울리는.. 2023. 11. 1.
이별사유 “나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짧은 한 마디로 전한 안타까운 소식과는 별개로, 그 말투는 마치 어제 야식으로 치킨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 같이 담백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한 반응에 놀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말의 화자가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도 누군가를 사귀고 헤어지며 마음 아파할 수 있지만 다행이도 그 말을 한 아이에게는 이번 이별이 대수롭지 않은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학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다른 학교 남사친에게 설곤약을 건내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쯤되자 그 여자아이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하마터면 내 입에서 나갈 뻔 했던 말이 다행이도 설곤약을 받은 남자 아이의.. 2023. 10. 6.
청개구리 대모험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는데, 세탁기 배수관 옆에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녀석이 어떤 모험과 여정을 거쳤기에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초록의 작은 불청객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작은 청개구리가 징그럽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욕실 안에서 개구리를 마주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개구리를 보며 처음 세운 계획은 조심스럽게 잡아서 마당의 풀밭으로 보내줘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쓸 데 없는 상상력이 저 작고 귀여운 개구리가 사악하고 징그러운 포식자인 뱀에게서 간신히 도망쳐 우리집 욕실로 피해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재생시켰다. 위협적이지도 않고, 해충도 아닌데다가 귀엽기까지 하니 스스로 욕실 밖을 나갈 때까지 그냥 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 2023.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