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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과메기가 들어 간 도넛

by R첨지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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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동안 제주도에 다녀오신 선생님이 도넛을 사왔다고 드셔보라며 권해주셨다. 마침 일이 바쁘기도 했고, 쉴 새 없이 운행 일정을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던 차에, 이게 웬 떡…아니 웬 도넛이냐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하지만 중고등부 부원장이 도넛 하나 받고 신나서 방방 뛰면 아이들이 무서워 할 것 같아 간신히 기쁨을 감추며 감사한 마음으로 얼른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도넛을 주신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도넛 안에 들어가 있다는 내용물의 정체를 듣자 나는 도넛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어졌다.

 

 

 ‘과, 과메기가 들었다고?‘ 

 

 도넛 안에 과메기라니 벌칙인가 싶었지만, 어쩌면 아직 내가 모르는 MZ 세대들의 최신 유행 별미, 혹은 제주에서 핫한 간식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이미 먹어 본 사람처럼 입맛을 다시며 도넛을 챙길 수 밖에 없었다. 과메기도, 도넛도 분명 맛있는 음식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혼합되어 있는 맛은 어쩐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 해도 퓨전 음식이 드디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맛을 보기도 전에 괴식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 내륙, 그것도 공항에서도 제법 거리가 먼 제천까지 이 음식을 챙겨 오신 동료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행여라도 먹고는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차마 선생님 앞에서는 먹지 못하고 운행을 하다가 아이들을 모두 내려주고 혼자 차에 있는 시간을 노려 조심스럽게 도넛을 꺼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크게 베어 물었다. 도넛 안에는 오메기떡이 들어 있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도넛을 주신 선생님도 분명 오메기떡이 들었다고 말씀해주셨지만 뭔가 급하게 일을 처리하러 강의실에 들어갔던 나는 오메기를 과메기로 엉뚱하게 들어버린 것이다. 

 

 도넛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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