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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형도 음악 듣는 거 좋아하지?

by R첨지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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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를 제대한 후에 복학을 하고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 동생은 부사관 학교를 막 마쳤을 때였는데.,임관을 앞둔 동생이 첫 휴가를 앞 둔 어느 날 전화 걸었다.

 “형, 집이야? 지금 인터넷 할 수 있어?”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당장 인터넷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을 보니 무언가를 급하게 검색하거나 대신 주문해 달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칠 뒤에 부대 배치 전 첫 휴가를 받게 되는데 그 때 가져 갈 애플의 아이팟 MP3를 대신 주문해 달라고 전화를 한 것이다. 당시 돈 없는 대학생이었던 나는 20만원 정도의 물건을 사 본 경험이 없었을 때라 내 손으로 20만원 상당의 전자기기를 주문한다는 것에 덜컥 겁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MP3를 대신 주문해달라고? 가격이 20만원인데? 근데, 이 사이트 사기면 어쩌지? 택배 사고로 부셔진 게 오면 어쩌지? 내 실수니까 내가 사줘야하는데? 알바비 들어오려면 얼마나 남았지?

 지금 생각해보면 클릭 몇 번으로 20만원 짜리 MP3 하나 주문하는 간단한 과정에 불과했지만 당시의 내게는 동생의 부탁이 부담스럽고, 어려운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생은 거침없이 모델과 색깔을 고르더니 내게 결제 방법을 무통장입금으로 하고, 입금해야 하는 제품의 금액과 계좌 번호를 문자로 보내줄 것을 주문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주문을 마무리하려는데 동생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 형도 음악 듣는 거 좋아하지?”

 “으,응? 그렇지? 나도 뭐 음악 자주 듣…”

 “그럼 두 개 주문해. 하나는 형 해.”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임관과 동시에 스스로 돈을 벌게 된 동생이 진정한 사회인으로 태어나기 위해 멋진 MP3를 구매하는 것이 내심 부러웠던 내 귀가 제 멋대로 만들어낸 환청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말투는 마치 카페에서 자기가 마실 커피를 주문하다가 옆에 있는 일행도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닿고, 점원에게 하나 더 달라고 주문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20만원 짜리 전자 기기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문하는 것도 놀라운데, 즉흥적으로 형에게 주기 위한 MP3를 하나 더 주문한다는 건, 더 할 나위 없이 파격적인 결정으로 느껴졌다. 요즘 시세를 감안하면,

 '형, 나 플스 5프로 좀 대신 주문해줘. 아, 형 방에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두 개 주문해.

정도의 충격적인 소비였다. 

 어느 새 나이를 먹어 그 일이 있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그 때 그 일을 잊지 못한다. 아마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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