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54 꿈에서도 일하는 나란 남자 학원에서 내가 제일 주력으로 하는 일은 놀랍게도 수업이 아닌 전화 받기다. "네, 기사님, 오늘 그 친구 몇 분에 차 탄대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오늘 누구 안 왔는데, 무슨 일 있으신가 해서요." "선생님, 지금 시간표 바뀌어서 2학년 애들 대신 3학년 보낼게요." "오늘 과학 수업 화학이야. 늦지 말고 와." "기사님 몇 분 있다 들어오세요? 애들 지금 내려보낼게요." 중간에서 100여 명의 출결과 수업 일정을 관리하다보니 업무가 끝나고 전화 수신이 얼마나 됐나 세어보면 적을 땐 150통, 많게는 200통의 통화를 한다. 특히 이번주는 개학을 한 첫 주라서 시간표도 바뀌고 아이들 등원 시간도 모두 바뀌는 바람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어찌어찌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 저녁이 .. 2021. 3. 6. 빚 2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맙게도 내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 중에 ‘내가 얘랑 이 정도로 친했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례식장을 지켜주며 이런 저런 도움을 준 친구가 있었다.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술 잘 마시고 좋아하는 사회인이었던 그 친구는 술 안 좋아하는 대학생이었던 나와 삶의 방식이나 색이 많이 달랐다. 그래서 그 후로도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서 어울려 노는 정도로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다가도 지인들의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장례식장이나 친구들의 결혼식에는 어김없이 나타나서 특유의 허세 섞인 농담과 유쾌한 태도로 친구들에게 웃음을 줬다. 어느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을 가더라도 그 친구는 늘 있었기에 그런 자리는 으례 그.. 2021. 2. 26. 내 보통의 하루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출근하면, 퇴근하는 9시까지 세 번에 나눠서 몰려오는 정신없는 일의 파도가 친다. 전반적인 관리 업무와 수업을 동시에 맡고 있다보니 아이들의 출결과 운행을 챙겨야 하고 혹시 변동 사항이 있거나 잘못되는 부분이 있으면 운행 기사님과 학부모님, 혹은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 째 파도는 초등부이다. 귀엽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나를 바라보며 동시 다발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어디 앉아요?, 화장실 가도 돼요? 물 마셔도 돼요?, 영어 언제 해요? 이거 모르겠어요. 집에 언제 가요?…”등등 끝도 없는 질문과 요청이 쇄도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제발, 한 명씩 천천히 물어보면 안될까?”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지만 나도 모르.. 2021. 2. 25. 작은 눈짓 한 번에 큰 감동 받은 날 “선생님, 저 오늘 가족들이랑 저녁 먹고 가서, 학원차 안 타요. 그리고 3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학원에서 아이들 출결을 관리하다보니 이런 류의 연락을 매일 받는 편이다. 올해 고 2가 되는 S의 전화를 받은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가족들이랑 외식? 밥 먹고 와? 맛있는 거 먹겠네? 선생님도 배고프니까 내 몫으로 두 숟갈 정도만 포장해 와.” 당연히 농담이다. 이 농담이 지향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말도 안되는 황당한 제안을 했을 때 이 녀석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보는 재미고, 두 번째는 내 부탁에 어쩔 줄 몰라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는 재미다. 하지만 S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내 농담을 많이 받아 본 녀석이라서 이런 식의 말장난을 받아치거나 빠져나가는 것에 능숙한.. 2021. 2. 18. 이전 1 ··· 4 5 6 7 8 9 10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