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였는지 아이슬란드였는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떠나보는 해외여행지 비행기표를 들고 공항으로 가는 꿈을 꿨다. 나는 아이돌 가수가 오디션 보는 것처럼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타국에 나간다는 사실에 필요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미 수 십 번은 확인한 것 같은 비행기표와 여권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꺼내서 쳐다보고 집어넣기를 반복한 기억이 선명했다. 가끔은 꿈을 꾸면서도 내가 꿈 속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꿈 속의 상황을 즐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꿈은 너무 생생해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꿈의 결말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비행기를 타지 못한 쪽으로 났다. 이것으로 난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대한민국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남자로 남게 됐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8시부터 20분 단위로 다섯 개의 알람을 설정해뒀으나 자리에서 일어난 건 10시 30분이었다. 시리얼과 닭가슴살 소시지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머리를 자르러 나섰다. 아침 저녁 공기는 쌀쌀해도 11시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는 적당한 가을 햇살에 시원한 바람이 어울려 산책하기에 딱 좋은 가을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이다. 걷기와 산책의 매력을 알아차린 타이밍에 하필이면 시험 기간이 시작돼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늘 머리를 자르던 미용실에 들어섰다. 평일 낮 시간대라 손님이 많지 않아서 금방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말끔해진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마음에 들어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차로 향하는 길에 카페에 들러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출근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요즘은 초등부 아이들을 학교에서 학원으로 데려다주는 것으로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는데, 고맙게도 아이들 끝나는 시간이 적절하게 분산되어 있어서 드라이브 하는 기분으로 여유있게 운행을 할 수 있었다.
일단 출근을 하면 늘 정신없고 일도 많아 힘들지만 오늘도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 순간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혜인이는 캠핑가서 칼모양 머리띠를 하고, 다른 텐트에 가서 사탕을 받으러 다닐거라고 자랑했고, 유찬이는 먹기 싫어서 드리는 거라며 뜯지도 않은 젤리를 내게 주고 갔다. 먹기 싫은 걸 줘서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아이다운 솔직함이 순수해 보여 귀여웠다. 우리 학원의 유일한 7살인 시현이는 학교도 안 다니면서 교장 선생님이란 말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어제는 나를 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더니, 오늘은 화장실 가다말고 갑자기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말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이렇게 오늘도 익숙하고 반복적인 것과 새롭고 놀라운 순간들이 뒤엉켜 하루가 지나갔다. 계획대로 일찍 일어나지도 못했고, 고등부 아이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시험을 잘보지 못했으며, 오늘은 일찍 자야지 했던 다짐도 지키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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