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자신의 주방에서 누군가 뭔가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작업 공간을 망가트리는 것처럼 불편해하시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필자는 자연스럽게 주방에 갈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요리와는 담을 쌓고 자랐다. 주방과 나의 거리가 얼마나 멀었냐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계란 프라이나 라면쯤은 만들 수 있었지만 전기 밥솥으로 밥을 하기 위해 물을 얼마나 맞춰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직접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몇 해 전에 나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에서 처음 본 백종원 선생님(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이 칼로리 폭탄 토스트나 두부를 갈아 만든 콩국수, 깻잎으로 만드는 모히또 등을 만드는 장면을 본 덕분이었다.
사실, 요리 만드는 영상을 종종 본 적은 있었다. 맛있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전문가들이 TV에 나와서 그럴듯한 요리를 만드는 장면을 보며 요리의 맛을 상상하는 일종의 유희를 종종 즐겨봤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즐거운 유희였지만 백종원 선생님의 요리 강좌는 보면서 즐거운 것과는 다르게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 때까지 봤던 요리 강좌 영상과는 다른 뭔가가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유투브 채널이든 예능에서 요리를 알려줄 때든, 백 선생님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하나 둘 소개하다가 몇 몇 재료를 언급하며,
“없으면 안 넣어도 돼유.아니면, 각자 좋아하는거 아무거나 다 돼!”
백 선생님은 일반 가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메뉴들을 간편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데 그마저도 없으면 넣지 말거나 아무거나 넣어도 된다니...무심코 버릇처럼 내뱉는 짧은 한 마디의 말이지만 그 말은 요리에 관심이 없던 나로 하여금 ‘저게 없어도 된다고? 마침 저거 말고는 집에 다 있네? 한 번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백 선생님의 요리 영상을 보기 전에도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강좌들은 일부러 마트까지 가야하는 까다로운 재료들과 어떻게 재는지도 알 수 없는 개량, 오븐 같은 주방 가전 같은 준비 과정에서부터 거대한 벽을 앞에 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따로 구매를 하지 않는 이상 계량 스푼이나 컵이 집에 없으니 재료 소개에 들어가는 소금 XXg, 닭고기 육수 XX리터...라는 것만 봐도 요리는 내가 시도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 영상들은 해당 요리를 만드는 사람을 전문적이고 능숙해보이는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나같은 요리 문외한에게 ‘저걸 만드는 건 어렵고 번거롭구나’라는 선입견을 심어주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백종원 선생님의 요리 강좌 영상은 요리는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자기 취향대로 만들어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다. 꼭 있어야 하는 재료를 최소로 하고, 없으면 말고, 혹은 각자 좋아하는 거 넣어서 만들어도 된다고하니 요리를 시도하기 편하게 만들어준다. 요리는 전문가나 주부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도구나 최소한의 조미료만 있으면 누구나 뚝딱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백종원 선생님이 나오는 예능을 보고 처음 만들었던 요리는 새우깡 버거였다. 새우깡과 햄버거 빵, 단무지, 마요네즈, 설탕으로 만드는 특이한 요리인데, 새우버거 맛이 난다는 말에 새우깡과 햄버거 빵을 사서 뚝딱 만들어내니 작은 조카 녀석이 맛있다며 야물딱지게도 먹어줬다. 그 순간부터 내가 직접 뭔가를 만든 요리를 굳이 맛있다고 표현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는 즐거움에 눈을 떴다.
그게 몇 년 전 일이었다. 그 사이에 필자가 요리 실력이 출중해지거나 엄청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밥이나 찌개,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 정도는 부담없이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요리와 가까워지게 됐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있다. 현재는 요리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중이다. 몇몇 재료들은 손질하는 과정에서 한숨이 나올 때도 있지만 칼로 재료를 다듬고, 물이 끓거나 팬에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것도, 별 맛 없던 재료들이 모여 새로운 맛이나 향을 띄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모든 시도에 맛있는 요리를 완성하는 수준은 아니라서 때때로 ‘이건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은 결과물이 만들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래도 입에 넣고 씹어 삼킬 수준으로는 완성하는 편이다.
한 편, 요리에 관심을 갖고 직접 만들어 먹어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거의 매일을 먹어와서, 그리고 요리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우리네 어머니들은 재야에 숨은 요리 고수, 그것도 엄청난 내공을 지닌 고수라는 사실과, 어머니들은 가족들이 먹을 한 번의 식사를 준비하시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노동의 과정을 거치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간단한 메뉴 하나 만드는데도. 주방과 도구, 손질하고 남은 재료들로 주방이 엉망이 되는데, 어떻게 우리 어머니들은 여러가지 반찬과 요리를 준비하시면서도 항상 정갈하고 깔끔한 주방을 유지하실 수 있는걸까?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요리 역시 시도해보지 않으면 멀고 어려우며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취업이나 대회 같은 전문적인 수준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 주변 사람들과 가볍게 즐기기 위한 요리를 만들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요리에 도전해보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필자처럼 백종원 유투브를 통해서 배우든, 블로그나 요리책을 통해서 배우든, 요리를 배울 수 있고, 보면서 무작정 따라해 볼 수 있는 수단은 널리고 널렸다.
거창한 요리 도구나 엄청난 양의 재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백종원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집에 있는 단순한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메뉴들도 많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간단한 요리부터 시작해서 하나 둘씩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요리의 가지수를 늘리고, 다양한 시도와 변주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있는 레시피를 만들어보는 것도 요리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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