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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독서의 몰락

by R첨지 202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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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었었다. 붉은색 표지에 검은 글씨로 장식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그 소설은 베스트 셀러였다. 만화책이나 무협지, 판타지 소설 말고는 딱히 오락거리가 없던 그 시절에 가족 중에 누군가 사다놓고 책장 한 쪽에 꽂아 둔 그 책은 별 감흥없는 잠깐의 시간 때우기 용이었다. 그 책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전에는...

 앞 부분 몇 장만 보다가 자려고 펼친 책이었으나, 창밖의 어둠이 어스름한 새벽의 색으로 바뀌도록 단 번에 그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읽어버렸다. 그리고 울었다. 엄청 서럽게 울었다. 혹시 내가 우는 소리에 가족들이 깰까봐 숨을 죽이고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정신없이 울었었더랬다. 그리고 그 날 아침부터 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가족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었던 중년 남자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니 단 한 번도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던 내 아버지의 내면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좀 더 어른스러워진 기분이었다.

 독서가 좋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혼자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넓어지고, 생각의 틀이 조금씩 유연해지는 것은 독서를 통한 자기 반성의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유익하고 건강한 책 읽는 분위기가 급격하게 몰락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크고 확실한 원인은 딱 하나라고 본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필자는 사교육 현장에서 중고등 학생들을 가르친다. 새로운 학생을 만나면, 처음 만나서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나는 학생에게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너 책 좀 읽어봤니?

 하지만 이미 학생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 지 알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책을 안 읽는다. 가령, 100명에게 책을 즐겨 읽는지 물어본다면 그 중 운 좋게도 한 명 정도 책을 가끔 읽는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그러면 나는 그 학생의 성적이 높은지 낮은지에 관계없이 미지의 세계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값진 보물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벅차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학생의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는 동시에,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자녀 교육을 하셨기에 스마트폰과 영상 미디어가 판을 치는 이 난세에 아이에게 독서하는 습관을 갖게 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조금 감정적으로 과장을 섞어 표현한 감이 없지 않지만 요즘 학생들은 그 정도로 책을 읽지 않는다. 만약 ‘공부만 잘하면 됐지, 책은 읽어서 뭐에 쓰냐?’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냥 조용히 이 블로그에서 나가주면 좋겠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블로그를 방문한다면, 어쩐지 ‘어리석음’이 전염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 TV 강연에서 강연자는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 실태를 언급하면서 “독서 문화가 붕괴됐다!” 고 표현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와 주변 지인들의 사례만 보고, “요즘 애들 책 정말 안 읽어. 우리 땐 무협지라도 읽었는데...”라며, 가볍게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의 시초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문제라고 본다.

 어릴 땐 동화책을 읽고, 조금 자라서는 판타지나 무협, 추리 소설을 읽으며 자란 세대와 다르게 요즘 아이들은 말문이 트이기도 전에 스마트폰과 영상, 게임에 빠지게 된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공공 장소에 갔을 때. 혹은 쉼없이 찡얼대는 아이의 신경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을 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에 집중하게 한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잠시나마 조용하게 만들 수 있는 쉽고 간편하며 확실한 방법이니, 그 방법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렇게 스마트폰의 영상과 게임의 재미를 알아버린 아이에게 ‘이제 휴대폰 그만 보고 책 좀 읽어라.’ 라고 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틀어놓고 보고 있기만 하면, 알아서 내용이 진행되는데, 집중과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읽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령, 패스트 푸드점에서 파는 햄버거의 맛에 빠진 아이에게, 햄버거는 맛이 좋은 대신 몸에는 해로우니 온갖 신선한 재료를 직접 골라 보양식을 요리해서 먹으라고 한다면 과연 누가 그 말을 따를까? 당장 나부터도 햄버거를 선택할 것이다. -맘스터치 딥치즈버거 .....

 아무튼 이같은 이유로 아이들은 책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성인들은 책과 친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9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연간 독서량은 6.1권으로 2년 전 조사에 비해 2.2권이 줄어들었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유투브 등의 다른 컨텐츠 이용(29.1%)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10대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대답이 비중이 가장 높았는데, 학교와 학원에 가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고등생들이 학교와 학원 탓에 여가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접 겪어 본 바로는, 그 부족한 시간 속에서도 아이들은 어떻게든 스마트폰으로 웹툰, 게임, SNS를 즐긴다. 그것도 밤늦도록 즐긴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스마트폰과 게임에만 매달리는 아이들의 상상력 결핍이다. 책 속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을 할 수 있게 한다. 가령, 해리포터를 소설로 읽는다면, 주인공들의 외모나 목소리,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 장면의 분위기 하나하나를 모두 상상하며 읽게 된다. 그러나 영화로 만들어진 해리포터는 상상할 필요없이 그냥 화면을 보고 있기만 하면 된다. 내용만 이해하면 되기 때문에 집중도와 편의성 측면에서는 책읽기가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글자로 되어있는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문자 매체의 매력은 시각 매체가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영역이다.

 책을 읽지 않은 다는 것은 풍부하고 다양한 상상을 해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고, 상상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영역에서든 창의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렇기에 한창 창의적인 사고력을 키워야 하는 청소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은, ‘큰일이야. 요즘 애들 책 안 읽어서...’라며 혀를 차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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