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소설은 허구라면서요? 근데 왜 공부해야 해요?”
학생들에게 소설을 가르치다 보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소설은 현실에 있음 직한 이야기를 작가가 상상해서 꾸며 쓴 허구의 문학이다. 그러니 소설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글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영어 단어가 외워지거나 수학을 풀게 되거나, 사회 혹은 과학 같은 과목의 점수가 오르는 것도 아니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소설을 공부하는 이유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전에,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지식을 쌓으며, 지혜를 얻는다. 쉬운 예로, 불이 뜨거운지 몰랐던 사람은 불에 덴 ‘경험’을 통해 불이 엄청난 고통을 주며 상처를 입을 정도로 뜨겁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의도적이든 실수든, 불에 익힌 고기를 넣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고기는 구워서 먹어야 더 맛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을 직접 경험이라고 하는데, 경험 중에는 이런 직접 경험 말고도, ‘간접 경험’도 있다.
가령, 앞에서 불에 덴 사람을 예로 들었는데, 누군가 옆에서 그 모습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직접 경험을 통해, 타인이 불에 데었을 때 아파하거나 그 자리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직접 경험을 통하지 않고도, 불이 뜨겁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불에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접근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간접 경험은 직접 경험처럼 확실하고 생생한 학습 효과가 없지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금 거창한 듯 하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은 직접 경험의 축적과 이것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전파한 간접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들을 다듬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불을 사용하고, 도구를 사용하고, 사냥과 채집, 농사 등등의 발견과 발명은 수많은 경험과 실패가 없었다면, 인간은 약육강식의 야생의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 녹아 있는 경험들이 인류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굳이 ‘인류 문명의 발자취와 존속, 그리고 발전’ 같은 거창한 이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고등학생들은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 지식을 쌓기 위한 책도 좋겠지만 자연스럽게 독서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는 소설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은 청소년 시기의 인성과 가치관을 세우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힐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경험, 그중에서도 간접 경험을 무한하게 확장시킬 수 있는 매개체로 소설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이때의 경험에는 직접, 간접 모두 포함되지만 아무래도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에는 직접 경험이 더 효과적이고 확실할 것이다. 따라서 가치관을 형성하고, 세상을 배우기에는 여행과 다양한 체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 좋다. 가령, 박물관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거나, 다양한 문화 체험 행사에 가서 직접 뭔가를 만들어보고, 느껴보는 것,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 등이 직접 경험의 바람직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중고등학생,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들은 직접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울 기회나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며, 학교를 마치면 학원에 가서 밤늦은 시간까지 학업에 매달려야 한다. 게다가 주말이나 여가 시간에는 게임방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노래방, 카페 등을 가는 게 전부이며, 그 외에는 스마트 폰만 쳐다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뭔가를 체험하거나 가서 직접 보고, 만지며, 느껴보는 직접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한참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키워야 하는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반복적이고 틀에 박힌 제한적 환경 속에서 갇혀 살고 있는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소설 읽기를 통한 간접 경험이다. 그중에서도 소설은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 인물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과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고,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할까? 중고등 교과 과정에 나오는 소설들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독서 자체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런 작품을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독서에 흥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소설 읽기의 재미부터 알아야 하는데, 중고등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읽어도 흥미가 생기지 않고 공감조차 되지 않는 교과서에 실린 작품부터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과제나 타의에 의해서 억지로 그런 작품부터 접하려 하다가는 자칫, ‘독서는 재미없고, 어려운 것’이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독서의 진정한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구성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내용의 (예를 들자면 권선징악 같은)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 혹은 스릴러 소설부터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중고등학교 때는 스마트폰이나 온라인 게임이 대중적이지 않아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아닌 혼자 방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소설이나 만화책을 읽는 것 말고는 딱히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락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도서 대여점에 가서 시리즈로 10권이 넘는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머리맡에 쌓아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재미에 빠지곤 했었다. 그 시절엔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재미있어서 읽었던 소설들이지만,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그 소설들 덕분에 독서의 매력에 눈뜨게 되었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두 권씩은 책을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사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며 국어를 가르치며 느끼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의 어휘력과 독해력이다. 사자성어나 속담과 관련된 문제는 뜻을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으면 찍어서 풀어버리는 건 다반사고, 학교에서 제법 높은 성적을 받는 아이들이 ‘애상, 예찬, 연민... 등의 단어 뜻을 몰라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에 재미를 붙인 아이들은 집중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독서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점점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교과 내용의 이해를 위해서든, 앞에서 밝힌 간접 경험을 통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든 청소년 시기인 중고등학생들에게 다양한 장르의 소설 읽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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