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기

재미없어야 하는데, 왜 재밌지?<모여봐요 - 동물의 숲>

by R첨지 2020. 10. 8.
반응형
728x90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닌텐도 스위치 독점 타이틀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 (이하 모동숲)이 처음 나왔을 때는 인기가 엄청났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인들이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시기에 맞물리면서 출시된 이 게임은 무인도에서 생활하며 자신만의 섬과 보금자리를 꾸미는 내용의 게임이다. 따라서 자가격리 혹은 외출이 금지된 상황에서 평온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좋은 반려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사람들이 느린 호흡의 위기감 없는 모동숲 같은 게임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는 해도 화려한 시각효과나 실사 같은 그래픽으로 무장하지도 않았고, 액션이나 갈등 상황도 전무하며, 그냥 생활하는 게 전부인 이 평화로운 게임이 이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모동숲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닌텐도 스위치의 인기로 연결됐다. 모동숲을 플레이할 수 있는 유일한 콘솔 게임기인 닌텐도 스위치는 물량이 없어, 입고와 동시에 품절이 되고,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라오는 제품에도 엄청난 가격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가 이루어질 정도였다. 전에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닌텐도 스위치를 켜면 한 두 번 힐끗 눈길을 주는 정도였다면, 당시에는 닌텐도 스위치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심상치 않다. 과장을 약간만 보탠다면, 마치, ‘저, 저게 그 유명한 동물의 숲인가...?’ 하는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각종 커뮤니티와 게임 BJ들의 주요 콘텐츠에도 모동숲이 연일 등장했고, 심지어는 내 주위에서 닌텐도 스위치에 대해 약간의 관심도 없던 지인들이 모동숲을 하고 싶어 닌텐도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는 전부터 모동숲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이 타이틀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는 정도의 관심만 있었을 뿐이다. 그 호기심은 ‘그냥 귀여운 아바타가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게 전부인 것 같은데 사람들이 왜 저렇게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에 열광할까?’였다. 그래서 나는 모동숲에 대한 팬심이 아닌 호기심으로 게임이 출시되자마자 닌텐도 E샵에서 다운로드하여 게임을 즐긴 경우였다.

 

 처음 예상했던 대로 모동숲은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게임이었다. 텐트에서 시작해서 집을 얻고, 낚시를 하고, 가구를 얻거나 만들고, 섬에서 잡은 동물, 혹은 땅에서 캐낸 화석으로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모동숲의 주요 콘텐츠들이다. 하지만 모동숲에서 보여주는 생활형 콘텐츠는 모동숲 이전에도 많았다. 낚시나 건설, 꾸미기, 재료 모으기는 모바일 게임에서도 지겹도록 봐왔던 내용들이었기에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본격적인 게임을 하기 전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모동숲을 하는 동안 흐르는 배경음악과 자연환경음, 그리고 각종 효과음이었다.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는 동안 흐르는 편안한 멜로디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으며,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할 때마다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들은 각종 소음으로 피로해진 귀를 차분하게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게임의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해도 모동숲은 다른 게임들처럼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살고 있는 집을 증축하려면 돈을 빌려 쓰고 갚아야 하는데, 그나마도 무이자 무기한이니 집을 증축할 마음이 없다면 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현실에서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필자는 집 구입과 증축의 유혹을 참을 수 없었다.) 따라서 전체적인 게임의 내용만 봤을 때는 모든 면에서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게임이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수족관 채우기가 제일 재밌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동물의 숲을 킨 주말 아침, 나는 20대 이후 처음으로 8시간 넘게 게임 멈출 수 없었다. 다음 날 출근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을지도 모르겠다. 모동숲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게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그냥 어지간하게 재밌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게 재미있다.(다분히 주관적이다.) 게임 속 내 섬의 이름은 ‘알겠’도 인데, 그 공간에서 이뤄지는 일상은 모든 것이 소소하고 편안하며, 즐겁고 재밌다. 절제되고 앙증맞은 그래픽과 색감이, 현실 세계와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편안한 느낌의 음악이, 작은 숲을 돌아다니며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섬과 내 집을 조금씩 가꾸는 모든 순간들이 딱 적당한 수준의 즐거움을 선사해줬다. 게임을 즐기며 계속 든 생각은 ‘이게 왜 재밌지? 재미없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재밌지?’였다.

 

 모동숲을 즐기는 방법은 시간 조절을 쓰는지 여부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게임 속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동일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조금씩 천천히 섬을 꾸미며 플레이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닌텐도 스위치 본체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게임 속 시간을 마음대로 바꿔가며, 빠르게 돈을 벌어 섬과 박물관, 그리고 집 안을 꾸밀 수도 있다. 언뜻 변칙적인 플레이처럼 보이지만 시간 조절을 이용한  플레이는 개발사 측에서도, 인정하는 플레이 방식의 하나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일반적인 다른 게임들처럼 경쟁도 긴장감도 스릴도 없지만 그 덕분에 느림의 미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섬을 갖게 된 기분이었다. 그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보고, 나무나 꽃을 심고, 계절마다 다르게 잡히는 물고기나 곤충을 잡는다. 그러다 힘들면 해변에 의자 하나 설치하고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내 캐릭터를 쉬게 하고, 그 사이에 나도 차를 한 잔 마시면 된다.

 

 이런 점들 때문에 모동숲은 휴식 같은 게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동안 취미나 시간 때우기로 휴일이나 휴식 시간에 게임을 즐겨해 왔지만 역설적이게도 게임이 주는 스트레스를 받는 게 사실이었다. 스테이지를 깨지 못해서, 혹은 과금 유도나 광고를 보는 게 짜증 나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해왔던 그간의 게임들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순수하게 즐겁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동숲은 앞서 언급한 피로감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즐겨도 피곤하지 않고 즐거웠다. 그 즐거움은 이렇게 순수하게 게임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빠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선하고 편안했다. 그제야 닌텐도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모동숲을 출시한다고 했을 때, 전작을 즐겨봤던 팬들이 왜 그렇게 열광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모동숲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이 타이틀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젠가 닌텐도 스위치가 아닌 차세대 게임기가 출시되고, 새로운 동물의 숲 시리즈가 출시된다고 발표된다고 상상해보면 나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열광할 것 같다.

 

 다만 이런 모동숲의 매력은 취향에 따라 극단적인 호불호로 나뉠 것이 분명하다. 정적이고, 평화롭고 편안한 게임을 재밌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도록 재밌게 즐길 수 있겠지만, 화려하고, 시원시원하며 타격감까지 겸비한 게임을 선호하는 쪽이라면 모동숲을 진득하게 오래 즐기긴 힘들 것이다. 게임이든 음식이든, 영화든 세상 모든 것에 취향을 타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모동숲도 그렇다. 그러니 이 게임을 즐길까 말까 고민인 사람이 있다면, 유튜브에 넘치고 넘치는 플레이 영상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자신의 기호에 맞겠다는 확신이 있다면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있는 타이틀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