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히어로 영화들에게 보란듯이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작품. 'The boys'
2008년 혜성처럼 나타난 '아이언맨'부터 시작된 히어로 영화의 성공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개성있는 능력과 사연을 지닌 영웅들이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마블의 영화들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퍼져나가기 전까지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오락 영화가 였다. 하지만 마블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올 11월 12일에 미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마블 영웅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도 만든다고 밝혔다.
로키나 스칼렛 위치, 윈터솔져나 팔콘처럼 영화에서 비중은 적지만 두터운 팬층을 가진 영웅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MCU의 세계관을 더 확장시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행보는 전세계 마블팬들에게는 분명 기쁜 소식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마블의 이러한 독주체제가 조금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마블 히어로들이 흥행할 수록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수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고 있기에 거대 자본이 들어간 영화, 소규모 독립 영화 할 것 없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마블의 작품들은 분명 재미있다. 다양한 갈등 구조와 서사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눈이 즐거운 볼 거리가 가득하다. 게다가 유명한 배우들이 한 데 모여 연기 대결을 펼치는 것도 마블 영화의 매력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마블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웅들의 정신력에 대한 부분이다.
MCU의 주인공들 중에는 초월적인 존재들(대표적인 인물 토르...그가 비록 살도 찌고 술을 좋아하며 단순 무식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엄연히 그는 신이다.)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웅들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최첨단 갑옷으로 무장을 했든, 마법을 쓰든,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었든, 그들의 멘탈은 평범한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마블의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들이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임무 도중 평범한 사람들을 다치거나 죽게 만들어 괴로워하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지우지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연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심한 정신적 상처를 받고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더라도 지구가 위험에 처하거나 눈 앞에 적들이 나타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각오로 사력을 다해 싸운다. 그리고 마침내는 승리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블의 영웅들 중에는 마약을 하거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확연하게 다른 위선적인 인물도 없으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부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도 않는다. 매우 모범적고 바람직한 영웅적인 모습들이지만, 영화에서 표현되는 그들의 능력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마존의 Prime Video에서 방영하는 ‘The Boys’는 히어로들이 능력으로 지구를 구하는 마블의 영화들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색다른 내용의 드라마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The Boys에 등장하는 영웅들도 재난 상황과 위기에서 평범한 시민들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대부분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게 없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돈과 명예,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힘세고 특별한 능력은 가졌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선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거나 더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The Boys의 주인공은 히어로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악역에 가까운 빌런처럼 표현됐으며, 이야기의 흐름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흘러간다. 작은 전자제품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휴이 캠벨의 여자친구는 거리에서 대화를 하던 도중 초고속으로 달리는 능력을 가진 히어로, 에이 트레인이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눈깜짝 할 사이에 몸이 터져 죽는 처참한 사고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사고를 낸 에이 트레인은 은행 강도를 쫓던 중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한 마디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는 그가 속한 거대 기업 보우트까지 그 사고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없이 금전적 보상으로 사고를 무마시키려 한다. 그 날부터 히어로들을 증오하게 된 휴이 캠벨이 자신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인물 빌리 부처를 만나 히어로들의 추악한 비리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 작품은 마블의 영화들과 달리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혹은 그보다 못한 도덕성과 정신력을 가진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거대 기업 보우트의 관리를 받으며, 의상, 대사, 복장, 행사 스케줄까지 유명 연예인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히어로 집단 세븐에 속한 영웅들은 누구보다 주목 받는 화려한 삶을 산다. 그러나 그들은 대중들 몰래 마약을 하거나 불필요한 살생을 하기도 하며, 변태적이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기도 하는 등의 추악한 비밀을 감추고 있다. 이런 설정과 내용은 만약 진짜 히어로가 있다면 아무리 육체적으로 강한 존재들일지라도 정신력은 평범한 인간과 다를 게 없을테니 저렇게 살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사실성을 부여한다.
만약 극중에 지구의 멸망을 불러올 외적인 존재, 예를 들어, 천재지변이나 외계 문명의 선제 공격 같은 주적이 등장한다면, 그에 맞서 싸우기 위해 힘을 합치는 내용이 그려지며 드라마의 내용이 조금 더 밝고 희망적인 색을 띄었을지도 모르지만, 크고 작은 사고나 테러 말고는 커다란 위기가 없는 이 드라마 속 영웅들은 명예와 부를 얻거나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능력의 강함이나 종류에 따라 인기도와 등급처럼 히어로 사이에도 계층이 존재하며,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 대신할까봐 불안해하며 영웅들끼리 음모를 꾸미거나 서로 배신하기도 한다. 신체적 능력이나 힘은 마블이나 DC의 영웅들과 비슷한 듯하지만 정신적 강인함과 도덕성에서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The Boys는 엽기적인 내용에 걸맞게 폭력성과 잔인함도 상당히 수위가 높다. 첫 화부터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터져 죽는 것을 시작으로 레이저 등으로 몸이 뚫리거나 날카로운 것에 잘리거나 하는 장면들이 매 화마다 한 두 번씩은 나오는 것 같다. 따라서 잔인한 장면에 거부감이 큰 사람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기존의 히어로 영화들의 공식을 뒤집으며 신선한 재미를 주는 작품을 찾는다면 ‘The Boys’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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