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사유

 “나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짧은 한 마디로 전한 안타까운 소식과는 별개로, 그 말투는 마치 어제 야식으로 치킨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 같이 담백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한 반응에 놀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말의 화자가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도 누군가를 사귀고 헤어지며 마음 아파할 수 있지만 다행이도 그 말을 한 아이에게는 이번 이별이 대수롭지 않은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학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다른 학교 남사친에게 설곤약을 건내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쯤되자 그 여자아이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하마터면 내 입에서 나갈 뻔 했던 말이 다행이도 설곤약을 받은 남자 아이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러자 여자 아이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헤어진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고, 그런 말을 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약 2분에 걸쳐 펼쳐진 그 아이의 이별 사연이 밝혀졌을 때 나는 여자아이가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 이유와 감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답게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체육 시간에 발야구를 하는 데, 내가 먼저 찰 차례였고, 그 바로 다음이 남친이었거든? 근데 내가 차려고 할 때 걔가 순서를 바꾸자는거야. 근데 그 말을 너무 늦게 듣고 내가 먼저 찼는데, 파울이 된거야. 그랬더니, 걔가 이렇게 될까봐 순서 바꾸자고 했는데, 왜 먼저 찼냐고 막 화를 내더라? 근데, 그 다음에 걔가 찼는데, 걔도 파울됐어.”

 발야구 파울이 이별 사유가 된 것은 초등학생들만 겪을 수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지나치게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여자친구의 실수에 대해 화를 내는 것도 모자라, 자신도 같은 실수를 범한 남자아이는 충분히 이별을 통보받을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비슷한 경험을 하려면 같이 볼링을 하러 가서 커플 대항전 같은 걸 할 때 여자친구가 실수한 걸 보고 화를 내고는 자기도 똑같은 실수를 했을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남자 아이는 왜 여자 아이가 헤어지자고 했는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근데 왜 헤어지자고 했어? 난 그 남자애 편!”

 

 넌 당분간 여자친구 사귀기 힘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