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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청개구리 대모험

by R첨지 2023.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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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는데, 세탁기 배수관 옆에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녀석이 어떤 모험과 여정을 거쳤기에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초록의 작은 불청객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작은 청개구리가 징그럽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욕실 안에서 개구리를 마주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세제 짚고 있는거야?😀

 

 개구리를 보며 처음 세운 계획은 조심스럽게 잡아서 마당의 풀밭으로 보내줘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쓸 데 없는 상상력이 저 작고 귀여운 개구리가 사악하고 징그러운 포식자인 뱀에게서 간신히 도망쳐 우리집 욕실로 피해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재생시켰다.

 

귀, 귀여워😳

 

 위협적이지도 않고, 해충도 아닌데다가 귀엽기까지 하니 스스로 욕실 밖을 나갈 때까지 그냥 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이번엔 풀 한 포기 없는, 잡아 먹을 수 있는 작은 풀벌레 한 마리 찾기 힘든 인간들의 욕실에서 고통스럽게 굶어 죽는 청개구리의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욕실에 우두커니 서서 혼자 자신이 주인공인 여러 편의 대서사시가 만들어지고 지워지고 있는 지도 모르는 채 어느 새 녀석은 이내 세탁기 아래 보이지 않는 공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디 녀석의 모험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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