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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집밥연가

by R첨지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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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지 두 달이 되어간다. 

그 사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던 시간도 지나고, 숨 막힐 것 같은 슬픔과 상실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이제는 엄마의 사진이나 영상을 봐도 눈물대신 미소를 지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지며 엄마가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엄마가 차려주시던 집밥 생각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으면 엄마는 주방을 분주하게 오가며 밥과 반찬을 준비해주셨다.

특별히 맛있는 거창한 국이나 반찬, 기름진 고기가 없어도, 

엄마와 같이 TV를 보거나, 말도 안되는 상황극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같이 웃고 밥을 먹었던 그 시간이 이제는 다시 올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당연하지만 엄마가 살아 계실 땐, 그런 순간들이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는 무한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지 못했다.

 

덕분에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의 빈자리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

음식 재료를 사거나 쌀을 씻어서 밥을 하고, 반찬을 준비하고

침묵 속에서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모든 과정을 혼자 하고 있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상에 올려도

입에 넣는 음식의 맛이 따뜻하고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식당에서 사먹거나 포장해 오는 음식들이 내게 만족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이 곤욕스럽다.

외식은 싫고, 그렇다고 집에서 뭔가를 만들어 먹기는 더더욱 싫으니 말이다.

내 사정을 알고 계신 여자친구 어머니께서 감사하게도 수시로 반찬을 만들어서 주신다.

전에 식당 경험이 있으실 정도로 음식 솜씨가 뛰어나셔서 여자친구의 집에 갈 때마다 감동을 하는데

희안하게도 그 음식을 집에서 혼자 먹을 땐 누군가 음식에 물이라도 탄 것처럼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아 

다 먹지 못하고 버릴 수 밖에 없을 때도 있다. 

 

엄마와 같이 먹던 집밥을 딱 한 번만 더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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