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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앉아서 소변 보는 남자

by R첨지 2020.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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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디오가 라디오에 나오는 스타를 살해한다는 내용의 팝송 제목에서 따온 자칭, 고품격 토크쇼의 재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에 나온 중년의 남자 게스트는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고백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도 자신도 집에서 그렇게 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진행자를 포함한 패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웃었다. 그때만 해도 남자가 되어서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그들이 우습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모름지기 소변이라는 것은, 여자는 앉아서! 남자는 서서!’라는 고정관념이 깊게 박혀 있었다. 

 

 언뜻 보면, 서서 소변을 본다는 것은 남자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서서 소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여성과는 확연하게 다른 남성의 신체적 특징에서 비롯된 배설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전통적인 서서 소변 보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부지런하게 찾아본다면 이름도 생소한 어느 대학이나 기관에서 이 독특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남자들이 어떤 배뇨 방식을 더 선호하는지, 몇 퍼센트의 남성들이 서서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했는지 따위의 통계를 낸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써서 그런 조사 결과를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남자들은 서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나 속단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문제만큼은 과감하게 확신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유경험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서서 싸는 쪽이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다른 과정 다 제쳐두고, 일단 서서 싸면 변기에 앉아서 바지를 무릎 아래까지 내리지 않아도 된다. 이 사실만으로도 편의성에 대한 논란은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앉아서 볼 일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제일 먼저 문을 열고 화장실에 들어가 엉덩이를 대고 앉아야 하는 변기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피부에 닿는 부분을 포함해 변기의 상태가 앉을만 하다는 판단이 서면 바지를 풀어 무릎 아래까지 내린 후에 조심스럽게 좌변기에 앉을 수 있다. 만약, 혹시라도 변기가 지저분하거나, 추운 날씨 탓에 차갑게 식어 있기라도 하면, 찝찝함과 불편함을 인내해야 한다. 본격적인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상당한 모험의 과정을 거친 것 같은 피로함이 몰려오는 것 같다. 다소 험난한 과정을 거쳐 볼 일 보기를 끝내면 휴지로 마무리를 하고 변기에 앉을 때의 과정을 역으로 거치며 화장실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남자 화장실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소변기 앞에 서서 바지를 위쪽 허벅지까지만 내리고 조준을 마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바지의 헐렁함 정도에 따라 바지를 내리는 대신 지퍼를 여는 것만으로도 준비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배변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변기에 몸이 닿지 않아도 되고, 탈의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과정이 절약되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한꺼번에 화장실에 많은 사람이 몰릴 경우, 상대적으로 과정이 복잡한 여자 화장실의 대기줄에 비해 회전율이 빠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서서 해결하면, 앉아서 소변을 볼 때보다 상대적으로 과정이 간편하기 때문에 대기줄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반적인 간편하고 쉽게만 보이는 이 배설 방법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 단점이라는 것은 서서 소변을 보는 자세 때문에 낙하 거리가 길어지며 불가피해지는 튀는 오줌 방울들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한 연구에 의하면, 서서 소변을 보는 경우 주변에 튀는 미세한 오줌 방울의 수는 하루 약 2300 방울이나 되며, 방경은 40Cm, 높이는 30Cm에 이른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이 소변 방울들은 욕실에 세균과 악취를 일으킬 것이다. 또한 옷이나 몸에 튄 소변은 온갖 곳에 뭍을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침대나 소파로 곧장 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짐작을 할 수 있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양인데 조금 묻으면 어떠냐고?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가족 중에 남자가 혼자가 아니라면, 하루에 평균적으로 소변을 보는 횟수가 5회에서 7회라면, 그 미세한 양의 소변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이쯤 되면 서서 소변을 보는 일은 거의 ‘참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니 화장실에 갈 때마다 상하의를 전부 탈의한 상태에서 소변을 보고, 볼 일이 끝난 후에는 변기 주변을 물로 깨끗하게 청소하고 샤워까지 할 생각이 아니라면 조금 번거럽더라도 앉아서 배뇨하는 쪽이 훨씬 위생적이다. 게다가 남녀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 때 갈등의 씨앗이 되는 좌변기를 내려두네 마네의 시빗거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 이상 서서 소변을 볼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앉아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변기 앞에 서 있다가 바지를 좀 더 내리고 앉는 것 뿐이었지만 그 상태에서 소변만 본다는 사실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도, 마치 누군가 날 보며, 조롱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낯섦도 잠시뿐이었다.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을 두세 번 출입하는 사이, 새로운 배뇨 방식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계속 앉아서 작은 볼 일을 해결할 생각이다. 이런 변화는 이제 갓 열흘을 넘긴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진 일이지만, 화장실에서 종종 올라오던 악취도 전보다 덜한 것 같고, 물 때가 생기는 것도 늦춰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혹은 그게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올바르지 않은 습관을 고치지 않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이 남자의 성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을 걷어두고, 그 행위 자체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비위생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배설 방식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나 혼자 잠깐 편하자고 사방팔방 오줌을 묻히고 다니는 어리석고 배려심 없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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