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종종 내게 먹을 걸 나눠준다. 자기들이 즐겨먹는 간식을 나눠주는 식인데, 간식이라고 해도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불량식품이나 어린아이들이 즐겨보는 유튜브에서 나온 독특한 맛과 모양의 젤리, 또는 과자나 초콜릿 같은 보잘것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그 ‘보잘것없는 간식’들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 그 이유는 내가 젤리나 불량식품 애호가이거나 군것질거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특유의 그 순수한 호의가 남다른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건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돈을 벌고 있는 성인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먹는 그런 간식쯤은 질릴 만큼 사다가 먹을 수 있는,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편의점이나 학교 앞 문방구에 들러서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가방이나 주머니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놨다가 먹고 싶을 때 한 두 개씩 꺼내먹을 정도로 소중한 간식일 텐데, 그런 귀한 것을 어른인 내게 나눠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작고 귀여운 손으로 건네주는 간식이 더 감동적인 이유는 어른들의 세계처럼 사사로운 대가를 바라며 베푸는 거짓 호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나눠주고 싶어서, 혹은 내 소중한 간식을 나눠줘도 되는 사람이니까 나눠주는 것이다. 값싼 불량식품 자체는 소중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걸 나눠주눈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인 내게 큰 울림과 감동을 준다. 따라서 올망졸망한 손으로 건네주는 아이들의 사탕이나 젤리, 초콜릿은 학원 강사일을 하는 내게 아이들이 주는 보상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진학을 앞둔 현재까지 학원을 다니고 있는 Y는 유난히 크고 동그란 눈을 가졌다. 작고 네모난 눈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Y는 얼굴이 작고 갸름해서 커다랗고 맑은 눈이 상대적으로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 귀여운 아이는 우리 학원 아이들 중에서 특히 간식을 자주 나눠주는 편인데, 어떤 날은 직접 만들거나 그린 종이에 포장해서 거의 선물처럼 정성을 들일 때도 있다. 이쯤 되면 나는 ‘이 귀한 걸 내가 받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이 아이에게 특별하게 뭔가 더 잘해주는 것도 아닌데, Y는 왜 내게 이렇게 잘해줄까?’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Y가 등원하자마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찾아 꺼내더니 두 손으로 감싸 쥔 알록달록한 봉지를 내밀었다. 생소한 모양과 이름의 막대 젤리였다. 길고 얇은 막대사탕처럼 생긴 젤리는 청사과 맛인 듯 형광색을 띠고 있었고, 비닐만 벗겨내면 주르륵 흘러내릴 것처럼 팽팽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나’라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 이거 선생님 주려고 챙겼어요.” 특유의 또랑또랑한 말투와 목소리로 젤리를 건네준다.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당장이라도 ‘오구오구’, ‘우쭈쭈’를 해주고 싶지만 참았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해서 지인의 아이들이나 친척 아이들을 만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이곳은 다른 아이들도 함께 공부하는 곳이기에 내게 간식 준 아이를 그렇게 칭찬해주고 예뻐하는 것을 드러내면,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 선생님께 저렇게 크게 칭찬을 들으려면 간식을 드려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할까 봐 되도록이면 크게 칭찬을 하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진심으로 고마움은 표현하되, 얼굴 표정과 말투에는 내가 크게 감동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아야 하는 고난도의 호응을 보여하는데, 이게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긴 해도 수년간 해왔던 일이기에 이제는 익숙하게 잘 해낼 수 있다.
“이거 선생님 주려고 챙겼어? 고마워 Y야. 선생님이 일하다가 힘들 때 맛있게 먹을게~”
그런데 정말로 바쁜 시간에 입에 단내가 나도록 수업을 하다 보면,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몸이 축 처질 때가 있다. 그럴 때 Y가 준 간식을 먹으면 당 보충이 되면서 그래도 좀 힘이 난다. 그 순수한 호의가 다시 한번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기도 한다. 나는 아무래도 아이들과의 이런 정서적 교류가 주는 보람과 행복 덕분에 이 일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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