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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았던 보쌈 도전기

by R첨지 2021.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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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글로 남기기도 했지만 2주 전에 누나네 집에서 먹었던 보쌈을 먹고 며칠 동안 가시지 않는 여운 때문에 보쌈 먹방 영상이나 블로그 글들만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누나네 집에 가서 대뜸, 보쌈 또 해주세요. 할 수도 없기에 결국, 내가 직접 보쌈을 만들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보쌈을 만드는 과정만 보면 돼지고기와 이것저것 잡내를 잡아 줄 재료들만 넣어서 삶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딱히 어렵거나 비싼 요리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집 안의 큰 행사 중에 하나인 김장 때 온 가족들이 모여서 모두 힘을 합쳐 만든 김치와 함께 먹는 음식이 보쌈이었기에 내게 보쌈은 김장 때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일종의 명절 음식 같은 특별함이 깃든 요리였다. 올 해도 일 년치 먹을 김장을 완성했다는 뿌듯함과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맛있는 음식을 나눈다는 정겨움이 깃들어져 있으니 특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집은 한 번 김장할 때 몇 백 포기씩 했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보쌈님은 감히 나 같은 요리 루키 정도의 레벨이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음식처럼 생각했다. 내가 보쌈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마치 이제 막 입대한 이등병이 전투모를 거꾸로 쓰고 침상에 다리 벌리고 누워서 ‘놀면 뭐하니’ 같은 예능을 보며 깔깔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보쌈을 하다니...선넘네?

 

 그런데, 김장하는 날도 아닌 날,  큰 처남 오랜만에 왔다고 매형과 누나가 고기를 사 오시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보쌈과 아삭하고 매콤한 무생채, 싱그럽고 고소한 배추에 굴까지 차려주시는 것을 보고는 나도 연습 삼아 보쌈을 만들어서, 보쌈 마스터가 되어, 언젠가 가족이나 친구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맛있고 따뜻하고 든든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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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요리의 가장 큰 매력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끼니 한 번이야 편의점에서 파는 어지간한 식당 메뉴만큼 잘 만들어진 도시락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같이 있으면 좋은 사람, 음식 맛있게 먹는 모습 보고 싶은 사람에게 직접 만든 요리를 내어주고 마주 앉아 기분 좋은 식사를 하는 기쁨. 재료도 준비해야 하고, 만들기도 해야 하고, 다 먹은 후엔 치우기도 해야 하지만 그런 번거로움 조차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그 정성과 마음.

 

 

 아무튼 그래서 나도 주말 시간을 이용해 첫 보쌈 만들기에 도전했다. 돼지고기와 배추, 양파와 마늘, 파, 된장을 사고, 무채 재료로 쓸 무도 하나 샀다. 보쌈 만드는 방법은 누나에게도 물어보고, 유튜브 영상도 제법 많이 검색해보고, 블로그 글도 꼼꼼하게 읽어봤다. 저마다 맛을 내기 위한 방식이 조금씩 달랐지만 그중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확인했다. 그래도 감동하면서까지 먹었던 누나의 레시피가 가장 기본이 됐다.

 

 

 큰 냄비에 양파와 생강, 대파, 월계수잎, 마늘, 된장, 수육용 고기를 넣고 물이 약간만 끓어오르는 정도를 유지하며 세 시간을 삶아냈다. 그리고 수육이 삶아지는 동안 채칼로 무채를 내고, 누나가 알려준 재료와 정량에 맞게 생채도 만들었다. 우아우아하며 끝도 없이 먹었던 배추도 잊지 않고 준비했다. 

 

 

 완성된 보쌈은 첫 시도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우선 고기에서 잡내가 나지 않았고, 생채나 배추와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생채 만들 때 무를 찬물에 담가 놓는 시간이 좀 부족했는지 무 특유의 알싸한 맛이 너무 강했고, 배추는 고소했지만 싱싱하지 않았으며, 보쌈에서 살코기 부분은 너무 퍽퍽했다. 그래도 완성된 보쌈을 여자친구와 맛있게 나눠 먹는 순간은 참 보람 있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첫 시도치고는 나쁘지 않았던 보쌈... 다음번엔 무생채도, 고기 고르기도, 배추 고르기도 좀 더 잘해서 훨씬 더 맛있는 요리를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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