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기

'인생영화'의 기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by R첨지 2020. 11. 29.
반응형

 사람들에게 “너의 인생 영화는 뭐야?”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큰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흘리게 만든 영화나 잊기 힘들만큼 재밌게 봐서 몇 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는 영화의 제목을 말한다. 물론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있는 기준과 잣대가 있기에 인생 영화라는 조금은 거창한 타이틀의 후보에 어떤 영화를 고르든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기호나 취향의 영역이다. 

 

 그러나 나는 인생 영화의 기준은 재미나 감동 보다는 그 영화가 내 삶의 가치관, 혹은 앞날의 방향성,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어느 정도의 영향과 충격을 주었느냐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는 2013년작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라는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월터 미티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는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는 거칠고 멋진 남자지만, 현실에서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도 제대로 건내지 못하고, 자신을 노골적으로 놀리는 못된 상사에게 싫은 내색도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평범하고 소심한 미혼남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진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월터는 자신이 일하는 잡지사의 종이 잡지의 마지막 호에 실릴 중요한 필름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필름을 찾기 위해 계획에도 없던 여행을 떠나게 되며, 그 여행을 거치며 점점 자신이 상상 속에 그리던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

 

이 장면을 스무 번도 넘게 본 것 같다.

 

 나는 이 영화의 월터 미티를 통해, 안정적이고 편안하며 익숙한 것만 추구하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가던 곳만 찾아가고, 먹어 본 음식만 먹고, 여행은 떠나본 적 없으며, 낯선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한 내 모습이 영화에서 그려진 월터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세 번 째 봤을 때, 나도 월터처럼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영화 한 편에 나름의 모헙을 시작하게 된건데, 최대한 모험의 느낌을 내기 위해 목적지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정하고, 이동수단도 대중 교통으로 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과감하고 무모했던 첫 여행은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잊지 못할 만큼 즐거웠다. 게스트 하우스란 곳에서 잠을 자보고,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밤새도록 대화를 하며 맥주도 마셔보고, 혼자 박물관에 들어가서 두 시간 넘게 관람도 해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밥에 소주를 마셔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일들이지만, 그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 순간들은 내게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매력을 알게 해줬다.

 

 

 책이든 사람이든 영화든, 어떤 계기를 통해 사람이 좀 더 성장할 수 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진다면, 그 앞에는 ‘인생’이란 수식어가 붙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코로나19 라는 범세계적 재앙 때문에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이 악몽같은 상황이 지나가면 여행부터 떠나고 싶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