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아이돌은 그 이름도 유명하면서 오래된 빅뱅이다. 그것도 그 팀을 좋아했다기보다 그냥 노래가 좋으니까 차에서 듣거가 음악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에 몇 곡 끼워넣는 수준이었다. 나는 그 정도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이돌에 관심이 없다.
엄청나게 꼰대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의 노래는 다 비슷비슷하게 들리고,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춤도 다 거기서 거기 같고, 팀과 그 팀에 소속된 인원들도 워낙 많아서 오래 살아남아 이제는 예능에서 훨씬 더 자주 보게 되는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정도다. 내가 철없던 시절에 즐겨 듣던 노래들을 향해 어르신들이 하던 말을 내가 하고 있을 줄 몰랐다. 그러던 내가 나이와 성별에 어울리지 않게도 BTS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스며들었다.
처음은 유투브 알고리즘이었다. 아무래도 즐겨보던 영국남자 채널이나 에밀튜브 채널처럼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이나 문화 경험해보고 신기해하는 영상을 자주 본 탓일 것이다. 아무튼 유투브 알고리즘이 어느 날 Dynamite 뮤비를 보는 외국인들 리액션 모음 영상을 추천 영상으로 띄워줬고, 마침 볼 게 없었던 나는 무심결에 그 영상을 보게 됐다. 그 때까지는 방탄소년단이 몇 명이며, 각 맴버의 이름이 뭐고, 이 때까지 외국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노래들을 했는지도 알지 못했었다. 그정도의 문외한이었다.
아무튼 그 영상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 옛날 뉴키즈언더블럭이 내한해서 콘써트를 했을 때, 수많은 팬들의 인파에 사고도 났었다는 뉴스를 본 세대인 내가 동양인만으로 구성된 미소년 그룹의 뮤직 비디오를 보며 비명을 지르고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외국인 팬들의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자부심과 이질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들은 영어나 일본어, 독일어 등으로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얼마나 좋고, 영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각 맴버들은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쉬지 않고 찬양을 했다. 중간중간 들리는 정확한 맴버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말하는 걸 듣는 것도 놀라웠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영상은 자연스럽게 비슷한 시리즈의 다른 영상들로 나를 이끌었고, 결국 추천 동영상에 뜬 모든 리액션 영상을 다 보게 됐을 땐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밤새도록 외국인의 리액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BTS의 뮤직 비디오까지 보게 된 것이다. 맴버들의 이름을 외우고, 각각의 파트가 뭐고, 외국인들이 각 맴버들의 어떤 매력을 특히 좋아하는지까지 파악이 되어버린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였을지 모른다.
처음엔 애써 부정해보려 했다. BTS의 모든 뮤직 비디오를 다 보고, 차에서 듣는 노래 플레이 리스트를 그들의 노래로 채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이너마이트 뮤비 봤냐고 안 봤으면 보라고 말할 때까지도 나는 그들의 팬이 됐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 나이에 남자 아이돌 팬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곡 티져가 뜬 걸 보고 정식 무비 공개 시간을 체크하며 그 시간을 나도 모르게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니 더 이상의 부정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저씨 아미니 뭐 이런 말은 도저히 부끄러워서 못하겠고, 그냥 나는 노래 챙겨듣고, 뮤비 챙겨 보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하는 BTS를 흐뭇한 표정으로 응원하는 구경꾼 아저씨가 딱 적당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이번 'Life Goes ON' 노래도 뮤비도 편안하고 조....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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