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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블랙미러 - 스미더린>최고의 드라마 중에 최고의 에피소드

by R첨지 202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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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 좋은 맑은 날, 런던의 중심가에 위치한 어느 거리에서 커다란 눈에 선한 얼굴의 남자가 자신의 차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다. 남자는 어떤 이유에선지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카오디오 음성으로 들려오는 명상에 의지해 불안함과 긴장을 떨쳐버리려던 남자는 휴대전화 알람에 눈을 뜬다. 남자의 정체는 호출 손님을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택사 기사였다. 휴대전화의 지도에 표시된 손님의 위치를 확인한 남자는 호출을 받아 잠시 후 젊은 여자 손님을 차에 태우게 된다. 조금 전까지도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여자 손님을 향해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스미더린이 직장이세요?”

 

 여자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못 들었다며, 다시 말해주길 요청하고는 자신의 휴대폰 액정으로 시선을 두기 시작했다. 남자가 재차 물었을 때, 여자는 스미더린이 자신의 직장이 아니며 잠시 들른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크게 실망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자신의 휴대전화 액정에서 눈을 떼지 않은 여자는 그런 남자의 표정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남자는 그때부터 여자와 대화할 마음이 없어졌는지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 되었지만 여전히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느라 남자의 그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채 친근하게 말을 건넨 남자와의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

 

 “스미더린이 직장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 안에는 글쎄 끝내주는 스파도 있어요.”

 

 하지만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여자는 무안해져서 ‘그렇다고요.’라고 혼잣말하듯 말을 얼버무렸다.

 

 다음 날, 남자는 다시 스미더린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명상을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다가 손님 호출에 운행을 시작한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스미더린에서 걸어 나온 남자는 뭔가 바쁜 일이 있는 듯,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공항으로 가달라고 한다. 남자는 손님에게 묻는다. 

 

 “스미더린이 직장이세요?”

 

 그러자 손님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남자를 바라보지도 않고 대강 대답한다.

 

 “네, 맞아요. 스미더린에서 일해요.”

 

 순간, 남자의 표정이 달라지며 무언가 큰 일을 앞에 둔 사람처럼 비장한 눈빛으로 차를 출발시킨다. 그러나 손님은 이번에도 휴대폰에 정신을 빼앗겨 수상한 남자의 표정을 발견하지 못한다. 뒷거울을 통해 손님의 눈치를 살피던 남자는 사고가 났는지 내비게이션이 다른 경로를 알려준다면서 좀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손님은 그렇게 하라고 한다. 남자는 손님의 틈틈이 눈치를 살피며, 자신이 정해 놓은 목적지로 향하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단 한 번도 창 밖을 살필 여유조차 없는 손님은 차가 엉뚱한 곳에 도착할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마침내 차가 멈추고 손님이 주위를 둘러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남자는 손님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케이블 타이를 건넨다. 

 

 “이걸로 네 손을 묶어. 어서!”

 

 남자의 정체는 납치범이었다. 그는 한적한 육교 아래에 미리 준비해 둔 새로운 차에 손님을 옮겨 태우고 어딘가로 이동하려 하는 듯 했다. 이제야 사태 파악을 하게 된 젊은 손님은 울먹이며 자신은 스미더린에 다니는 사람이긴 하지만 인턴이며, 상사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공항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손님의 말을 들은 남자는 불같이 화를 내며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턴이라고? 그럼 왜 그런 망할 정장을 입고 있는거야?!”

 

 “이번 주가 첫 출근이거든요.”

 

 남자는 어렵게 납치한 인질이 스미더린 회사에서 가장 말단이란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다. 한참을 복잡하게 생각에 잠겼던 남자는 이내 명상하듯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인질이 된 손님에게 두건을 씌우고 트렁크에 태우려고 했다. 그러자 손님은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트렁크에는 가두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 전문적인 납치범이었다면 인질을 기절시킨 후 편하게 자신이 의도한 대로 움직일 텐데, 남자는 납치가 처음인지 마음이 약한 건지 못 이기는 척 인질을 트렁크에서 나오게 한 후 뒷좌석에 앉히고 차를 출발시킨다. 그러나 애초의 계획대로 트렁크에 인질을 태우지 않은 탓에 마침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경찰관의 눈에 띄게 된다. 그리고 이내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수상한 차량이라는 이유로 추격을 받는다.

 

 

 모든 것이 꼬여버린 남자는 무리해서 경찰을 따돌리려다 한적한 시골의 밭 한가운데 차를 빠트리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경찰과 대치하게 된다. 누구든 가까이 다가오면 인질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며 남자가 인질에게 요구한 건 스미더린의 창업주인 ‘빌리 바우어’와의 통화였다. 한 편 스미더린 경영진들은 남자가 돈을 요구할 것이라 판단하고 남자가 빌리 바우어와 통화를 하기 전에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라며 시간을 벌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범인이 돈을 요구하면 돈을 주면 된다고 말하며 빌리 바우어는 경영진의 만류에도 남자와 통화를 하게 된다. 남자는 빌리 바우어와 통화하는 상황을 연습하기도 했다면서 왜 이런 소동을 벌이면서까지 스미더린의 창업주와 대화를 하려고 했는지를 밝히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연 남자는 무엇을 바라고 빌리 바우어와의 통화에 그렇게 집착을 했던 걸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블랙 미러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겪고 있거나 겪게 될지도 모를 인간의 추악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그려내는 옴니버스식 영국 드라마다. 블랙미러의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어지간한 영화는 씹어먹을 수 있는 평균 이상의 재미를 가진 드라마지만 간혹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망스러웠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시즌5 2화 ‘스미더린’은 블랙미러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은 에피소드였다. 중심 소제가 되는 스미더린은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IT업계의 공룡 같은 기업이며, 주인공이 집요하게 통화를 하고 싶어 했던 창업주 빌리 바우어는 스미더린을 만든 창업주다. 자연스럽게 현실 세계의 페이스북과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가 떠오른다.

 

 어설픈 인질극을 벌이며 절망적인 상황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 역은 드라마 셜록 시리즈의 ‘짐 모리아티 교수’ 역을 맡았던 앤드류 스콧이 맡았다. 셜록에서도 선 굵은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베네딕트 컴버베치와 마틴 프리먼의 그늘에 가려져 두드러져 보이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극 전체를 혼자 끌고 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강렬하면서도 애절한 연기를 선보인다. 또한 드라마의 시작이 주인공이 명상에서 깨어나며 눈을 뜨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빌리 바우어가 명상에 들기 위해 눈을 감는 장면으로 연결되는 수미상관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작중에서도 나오고 마지막 장면 이후에도 주제곡처럼 흘러나오는 노래 Can’t take my eyes off you(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요)가 가장 압권이다. 사운드 트랙을 그 유명한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다고 한다. 그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선곡이라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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