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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025 일요일

by R첨지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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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정확하게 7시에 호연이 이모님이 하시는 삼겹살 집에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자리에 오기로 했던 슬기는 어쩐 일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섯 명이 다 모이지 못해 아쉬웠지만 뭔가 일이 있겠다고 생각하며 모인 친구들끼리 밥을 먹기로 했다. 집에 있을 땐 주로 나나 동생이 고기를 굽는데, 친구들과 있을 땐 늘 동길이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같이 모여서 고기를 먹을 때면 집게와 가위는 늘 동길이 손에 쥐어져있게 됐다. 워낙 함께 해 온 세월이 오래 됐기에 이 친구는 우리가 원하는 고기의 크기와 익힘 정도를 잘 알고 있다. 고기의 크기가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잘라주는데다, 불판 위에 익은 고기의 양도 알맞게 유지하는 그 능숙함과 익숙함이 편하고 좋다.

 

 

 항상 차를 핑계로 함께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려 이번엔 아예 차를 두고 걸어서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소주를 한 잔 두 잔 넘기다보니 각자 한 병을 다 마셨다. 보통은 한 병 정도 마시면 적당히 취하는데 오늘은 마음 편하고 기분 좋게 마셔서그런지 얼굴만 조금 붉어지고 취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갈까 했지만 가까운 곳에 갈만한 곳이 없어,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를 한 잔씩 사서 마셨다. 밥 먹으면서도 한참 떠들었는데도 뭐 할 말들이 그리 많은지 편의점 앞에서 한참을 놀다가 헤어질 때의 시간은 9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호연이는 피곤하다며 곧장 집으로 들어갔지만 준영이와 동길이는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했다. 

 

 “어렵게 나왔는데 벌써 들어가려하다니, 이래서 결혼 안 한 것들은 안돼.”

 

 나도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 과자와 맥주를 사서 우리집에서 다시 모이기로 했다. 뭔가 엄청나게 놀 것처럼 비장하게 만든 2차 자리였지만 정작 모여서 한 건 TV예능을 보며 시덥잖은 농담만 주고 받기였다. 안주로 사 온 과자 중에 홈런볼이 있어서 에어프라이어에 살짝 구워서 맛을 보여줬더니 모두 맛있어 했다.

 

 TV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 예능에 나온 연예인들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에 낄낄거리며 웃고 있으니 철없던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 땐 혼자 살던 동길이 집을 아지트 삼아서 이렇게 여럿이 모여 자주 놀곤 했었다. 옛날 생각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현실로 돌아온 건, 준영이 아이들이 걸어 온 영상통화 덕분이었다. 아빠가 되어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짓는 준영이의 모습을 보니, 친구들과 함께한 세월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결국 11시가 조금 넘어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청소와 정리를 한 후에 샤워까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이면 다시 출근을 하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야 가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런 여유있는 시간이 뜻깊게 느껴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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