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정확하다면 난 초등학교, 아니 당시엔 국민학교였다. 아무튼 1학년이었던 8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지금이야 영화를 볼 수 있는 매체와 방법이 무궁무진하지만 그 때는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영화를 보려면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던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빌리거나 토요일 밤에 방영되던 주말의 명화나 토요 명화를 보는 수 밖에 없었다. 가끔 비디오 가게에서 후레쉬맨 같은 걸 빌려 볼 때 말고는 당시의 내가 영화를 보는 주된 매체는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가 전부였다.
토요일 밤 9시 뉴스와 스포츠 뉴스까지 끝나고 9시 50분 정도가 되면 시작되는 영화 감상 시간은 항상 엄마와 함께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영화보다 엄마와 함께 빵이나 과자를 우유와 함께 먹으며 성우들이 더빙한 영화를 보던 그 시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TV 앞에 앉아 오프닝 시그널 음악을 들으며 부디 재밌는 영화가 나오길 바라면서 광고가 시작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광고가 시작돼야 그 날 나오는 영화의 제목이 광고 우측 상단에 표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제목이 나와도 그게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면서 뭔가 재밌을 것 같은 제목이 나오면 뽑기에 성공이라도 한 것처럼 뛸 듯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엔 재밌게 보던 광고마저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기다림이 끝나면 영화가 시작됐다. 물론 당시에 봤던 영화들이 어떤 영화였는지는 대부분 기억이 않는다. 하지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 한 가지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꼬마 주제에 내가 엄마에게 영화의 내용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내가 영화 해설을 시작한 건 아니고, 영화를 보던 중에 엄마가 내게, “저거는 왜 저렇게 된거야?” 라고 질문을 했다. 그럼 나는 엄마가 정말로 영화의 내용을 이해 못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이해한 대로 “주인공이 저 나쁜 남자의 부인을 구해준거야. 그러니까아 저 나쁜 남자도 이제 좀 착해져서 저렇게 우리 편이 된거야.” 대충 이런 식의 설명을 이어갔다. 그럼 엄마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대신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는 듯 감탄을 하며, 아들이 설명해주니 바로 이해가 되고 영화가 더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럼 나는 더 신이 나서 영화를 더 집중해서 보면서 엄마가 이해 못 했을 것 같다고 판단한 부분을 더 집중적으로 보며 열정적으로 영화에 빠져들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나도 영화를 즐겼다기보다 영화를 이용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당시의 어린 나로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영화의 내용을 마음대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 덕분에 그 시절의 어린 나는 영화를 보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고, 엄마는 낮에는 직장에 다니시느라 함께 하지 못한 아들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엄마와 나는 영화 감상 그 이상의 정서적 교류를 나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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