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어플에서 모든 요일 6천원 할인 쿠폰을 발견했다. 게다가 무려 두 장! 보통 영화를 혼자 보기보다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보러가서 두 개를 준 거겠지만, 난 보러 갈 사람따윈 없으니 혼자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 감기 몸살로 컨디션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침 오래 기다렸던 영화인 ‘이터널스’와 ‘듄’이 모두 개봉했기에 먼저 ‘이터널스’를 보러 영화관으로 향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블로그 리뷰 포스팅이나 유투브 리뷰 영상을 보진 않았지만 추천 영상으로 뜬 몇몇 썸네일 제목을 통해 ‘이터널스’가 그동안 선보였던 마블의 작품들과는 다른 색을 지니고 있고, 그 결과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뉘는 영화라는 사실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인 클로이 자오가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할 만큼 연출력을 인정 받은 감독이기도 했고, 평소 좋아하는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와 마동석 등이 나온다는데 고작 호불호가 나뉜다는 평가 때문에 보러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터널스’는 마블 페이즈 4의 세 번째 영화로 상영 시간이 156분, 2 시간 30분이 넘는다. 열 명이나 되는 이터널스의 맴버들과 우주의 기원, 인류의 역사와 이터널스의 관계, 셀레스티얼과 데비안츠라는 새로운 존재들에 대한 서사까지 풀어가야 하기에 긴 상영 시간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셀레스티얼의 명령을 받은 이터널스가 지구에 온 목적과 인류를 처음 만나 문명 발전에 도움을 주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적 생명체를 잡아 먹는 데비안츠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임무를 받은 이터널스는 각자의 능력을 조화롭게 사용하며 인간들을 돕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류의 구원자이자 지도자인 것처럼 보이는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서로 다른 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존재들이기에 서로 사랑을 하기도 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인간을 돕는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터널스가 어떻게 인간을 도왔고, 왜 분열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모두 없앴다고 생각한 데이안츠가 다시 나타나고, 이터널스는 다시 힘을 합치기 위해 몇 세기 만에 뭉치려 하지만 그들의 리더였던 에이잭은 이미 의문의 죽음을 당한 상태였다.
여기까지가 중반부의 줄거리이고, 그 뒤로는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클로이 자오 감독의 연출과 능력에 감탄하게 되는 동시에 어떤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이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이터널스가 만족스러웠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런닝 타임이 2시간 30분이 넘어간다 해도, 열 명이 넘는 주요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을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서, 히어로 무비가 보여줘야 하는 볼거리도 보여주고, 이터널스라는 새로운 영웅들을 마블 시네마틱의 세계관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보니 기존의 마블 영화들에서 익히 봐왔던 주인공과 빌런의 분명한 대립 관계와 선악의 분명한 경계, 주인공이 이기면 영화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이분법적 전투 씬이 없다. 중간중간 데이안츠와 전투를 하는 장면은 나오지만, 그 전투들이 이터널스 맴버들에게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아서, 데비안츠가 쓰러져도 빌런을 쓰러트렸다는 쾌감이나 후련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의 마블 영화들처럼 주인공과 적의 경계가 분명하고, 주인공 쪽이 멋진 액션을 보여주며 이기기만하면 되는 단순한 구조의 작품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터널스’가 다소 낯설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 같은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터널스의 맴버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뇌하거나, 같은 문제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대립하거나 예상 밖의 선택을 하게 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의 서사를 따라간다면, 두 시간 삼십분이 넘는 상대적으로 긴 상영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로운 매력이 많은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처음 소개한 세계관들은 이미 멀티 버스와 우주 등으로 세계관을 넓힌 마블의 세계관을 더욱더 확장시켜 놓았다. 어찌보면 지나치게 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지금까지 마블의 영화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마블 작품을 처음 접할 때의 문턱을 한 단계 더 높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 세계관을 잘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측하기 힘들어진,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이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터널스’는 마블의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를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들이 한층 더 확장하고 웅장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에는 반대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제 마블 이야기 따라가는 거 힘들다. 더 이상 안 보련다.’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이터널스 관람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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