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기

알고리즘에게 감사를! "멋진 유투브 채널을 찾았다."

by R첨지 2021. 10. 27.
반응형

 

 퇴근하고 잠들기 전에 youtube로 이런저런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비슷비슷한 썸네일들, 어떻게든 자신들이 만든 영상을 봐달라고 부르짖는 것 같은 괴상한 말장난 같은 제목들 사이에 남다른 간결이 인상적인 썸네일이 추천 영상 목록에 떠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목은 "모태솔로의 겨울" 썸네일엔 영상에 대한 그 어떤 소개 문구도 없었다. 그저 퉁퉁하고 짧은 다리의 남자가 한 쪽 손에는 운동화를 들고 있는 하반신이 썸네일의 중앙을 채우고 있었고, 그 뒤로는 공원에 놀러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 썸네일을 보고 있으니 3분이 조금 넘는 영상에서 스스로를 모태솔로라고 밝힌 저 남자는 어떤 우울한, 혹은 자조적인 내용을 전달하려는걸까? 하는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게다가 남자가 한 쪽에만 신발을 신고, 나머지 한 쪽 신발은 손에 들고 있는 이유도 궁금했고, 남자의 발 아래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컵라면의 정체도 궁금했다. 결국 난 뭔가에 홀린 듯 그 영상을 재생해서 감상하기 시작했다.

 

 

  채널의 주인공이자 영상을 만든 원이라는 남자의 평범한 하루를 담은 3분 짜리 영상은 여러 번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유투브 영상을 봤지만 누군가의 개성이 이토록 강하게 느껴지는 영상은 처음이었다. 말 한 마디 없이, 노래와 영상만으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으며, 다양한 구도에서 찍은 연출과 편집, 그리고 상징적인 소재까지 있어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한 편으론 한 편의 잘 써진 글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나는 곧바로 이 멋진 영상을 만든 '원의 독백'이라는 채널의 구독 버튼을 눌렀다. 3분 짜리 영상 단 한 편을 보고 누군가의 채널구독을 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영상의 시작은 햇빛 좋은 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공원에서 시작한다. 두 남자가 앉아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여자친구가 온 것 같다며 남아 있는 남자가 건내는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서둘러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커피를 마시며 일행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던 남자는 말없이 에어팟을 꺼낸다.

 

 에어팟 뚜껑을 열어 본 남자는 당황한다. 한 쪽 에어팟이 어딘가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황한 듯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결국 찾지 못한 남자는 한 쪽 귀에만 에어팟을 낀 채 음악을 재생하고 공원 풀밭에 홀로 눕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새소년'의 '눈'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난 이 장면부터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노래의 첫 가사가 '사랑'인데, 누군가 직접 흘려 쓴 것으로 보이는 노래의 가사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것보다 놀라웠던 것은 남자가 한 쪽 귀에 에어팟을 끼고 노래를 듣는 것처럼 영상을 보고 있는 내 헤드셋에서도 한 쪽에서는 음악이 들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공원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영상 속 주인공의 상황이 된 것 같은 몰입감이 느껴지며 감정적으로 남자의 상황과 감정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혼자 어딘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남자 주위로 즐겁게 노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름다운 비누방울이 겹쳐진다. 마치 세상은 모두 누군가와 즐거운데, 남자만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외로움과 쓸쓸함, 고독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편의점에 들어간 남자는 컵라면을 사들고 공원 구석에 위치한 평상에 앉아 혼자 컵라면을 먹기 위해 나무 젓가락을 뜯는다. 그런데 젓가락마저도 한 쪽이 부러지는 바람에 남자는 하나 남은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혼자 남은 남자처럼 한 쪽만 남은 에어팟, 한 쪽만 남은 젓가락...영상에서 뿜어져 나오던 고독함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남자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쪽 젓가락으로 힙겹게 먹던 라면을 한 쪽 발에 흘리고 만 것이다.(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남자가 신은 신발은 180만원 짜리 운동화였다. 그 운동화를 산 이유를 밝히는 영상도 너무 좋았다.) 남자는 라면 국물이 뭍은 운동화를 벗어 한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에 밤이 찾아오고, 도심의 환한 불빛 사이에서도 어둠 속을 향해 혼자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이어진다.

 

 

 그러다 남자는 코인 노래방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혼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에서 배경으로 흘러나오던 새소년의 '눈'의 클라이막스 부분이 원곡에서 남자의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연출도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원곡과는 다른 색으로 절절하면서도 뛰어난 실력의 가창력이 더 놀라웠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눈'의 원곡 대신 노래방 반주 특유의 투박한 간주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험난하면서도 쓸쓸한 여정 끝에 도착한 남자의 집, 남자가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자 문 옆 선반 위에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한 쪽 에어팟이 올려져 있다. 남자는 그 에어팟을 집어들고, 배경음악으로 깔리던 노래방 간주도 끝나더니, 노래 점수가 나오고 노래방 기계가 노래를 잘했다며 축하해주는 소리를 끝으로 영상이 끝난다. 

 

 

"이렇게 잘 부를수가! 매려어억이이~ 넘쳐요오오오~"

 잃어버린 에어팟도 언젠가는 찾게 되는 것처럼 영상 속 주인공도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니 언젠가는 짝을 찾을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 아닐까?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자신의 외로움도 표현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도 전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것도 3분 11초라는 시간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멋진 영상이었다. 

 가끔 평범한 유투브 영상들을 보다가 편집이나 연출, 내용 전달 방식을 보고는, 오, 저거 나도 나중에 따라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이 영상은 감히 어떻게 흉내낼 엄두도 낼 수 없는 수준의 감각과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이 채널을 알게 해 준 알고리즘에 고마움을 느낀다.

해당 영상 링크를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https://youtu.be/IIoQAAUHL3I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