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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카메라 셔터만 누를 줄 아는 나의 카페 메뉴 촬영 도전기

by R첨지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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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동생이 카페를 오픈했다. 같은 지역은 아니고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문막에 위치한 작은 카페인데 정식 오픈 전에 친구들과 함께 축하도 할 겸, 메뉴들 시식도 할 겸 찾아 간 적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새로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꼼꼼하고 소신있는 성격을 가진 동생이니 잘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가게는 넓지 않았지만 갖출 건 다 갖춰져 있었다. 맛을 봐달라며 만들어 준 음료들이나 빵, 샌드위치도 모두 맛과 가격이 양호해서 이 동생이 카페를 오픈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메뉴판과 배달의 민족에 들어갈 메뉴 사진이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평소 사진을 즐겨 찍거나 했던 녀석이 아니라서 카페 음료나 샌드위치 사진은 어딘가에 내보이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그 때 마침 최근에 구입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마치 전문적인 사진가라도 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주제도 모르게 동생에게 메뉴 사진은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것보다 비싼 건 아니어도 내 카메라로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버렸다. 

 

 카페나 식당의 메뉴 사진을 촬영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롭게 자신의 가게를 여는 동생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음식이나 음료 사진 촬영 경험이 없다지만 80만원 짜리 카메라이니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보다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정말로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차를 가져오셔야 하는데다 시간도 제법 걸리는 작업이니 수고비 면목으로 돈을 받아주시는 걸 전제로 촬영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개업 선물로 그냥 찍어준다고 해도 막무가내였기에 일단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일요일 보강을 마친 후에 카메라를 챙겨 동생의 가게로 향했다.

 

처음엔 호기롭게 찍어준다고 했으나 막상 후배의 매출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메뉴 사진을 찍으러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긴장감과 막중한 책임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영업이 끝나고도 나를 기다리느라 퇴근도 못하고 있는 후배에게 이제 와서 “내가 너무 경솔했다.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 불러서 해“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게에 도착해보니 후배는 조명까지 붙어 있는 미니 스튜디오 포토 박스도 구매해서 세팅을 해놓은 상태였다. 일단 크루아상과 크로플로 만든 디저트 메뉴들부터 시작해서 한 장씩 음식과 음료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하얀 배경에 음료나 접시에 담긴 디저트들만 촬영하면 됐기에 내 예상보다 순조롭게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음료를 만들고, 사진을 찍은 후에 믹서기를 씻어서 다시 다른 음료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기에, 중간중간 시간이 날 때는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 옮겨서 큰 화면으로 잘 나왔는지 확인을 할 여유도 있었다. 

 

 

 그러다 중간 정도 작업을 마쳤을 때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정된 음식을 촬영하면서 삼각대도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보정을 쉽게 하기 위해 노출값이나 셔터 스피드 등의 설정을 완벽하게 맞춰놓고 찍어도 모자랄 판에, ‘사진이 너무 어두운가?’ , ‘배경이 너무 흐릿한가?’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며 노출이나 셔터 스피드도 수시로 바꿔가며 촬영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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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카페 메뉴 사진을 처음 찍어본다지만 지나치게 안일하고 대책없이 일을 시작한 것이다. 다시 촬영하기에는 삼각대를 구할 방법도 없었고, 이미 사진을 찍고 마시거나 배가 불러서 버린 음료들도 많았기에 다시 처음부터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일을 망쳐버렸기에 나름의 보완책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조금이라도 후보정을 해서 최대한 비슷한 색감으로 통일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에 포토샵을 구매하기로 한 것이고, 두 번째는 혹시 그럼에도 마음에 안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를 대비해서 후배에게 카메라를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촬영용으로 만든 음료는 내가 최선을 다해 마셨다. 내가 마시거나 챙겨가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기에 작업이 다 끝난 12시에 각양각색의 음료를 한 차 가득 실어 와서 늦은 시간에 안 자고 있는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진이 그나마 잘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첫 촬영임을 감안한다해도 색감과 밝기가 일정하지 않은 결과물을 잘 나왔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진을 일정한 크기로 조절하고 나름 밝기도 조절해서 결과물을 보낸 결과물은 며칠 뒤에 배달의 민족에 올라왔다. 내가 찍은 사진이 메뉴 사진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았지만 완성도 면에서 큰 아쉬움이 남았다. 다시 올릴 수 있게 음료 부분 누끼를 따고 하얀색 배경에 합성도 해봤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뭔가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보람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과정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보려고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과정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참고로 문막에 있는 에그빈 카페에 파는 음료 가성비도 엄청나고 무엇보다 계란 토스트가 말도 안되게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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