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내가 제일 주력으로 하는 일은 놀랍게도 수업이 아닌 전화 받기다.
"네, 기사님, 오늘 그 친구 몇 분에 차 탄대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오늘 누구 안 왔는데, 무슨 일 있으신가 해서요."
"선생님, 지금 시간표 바뀌어서 2학년 애들 대신 3학년 보낼게요."
"오늘 과학 수업 화학이야. 늦지 말고 와."
"기사님 몇 분 있다 들어오세요? 애들 지금 내려보낼게요."
중간에서 100여 명의 출결과 수업 일정을 관리하다보니 업무가 끝나고 전화 수신이 얼마나 됐나 세어보면 적을 땐 150통, 많게는 200통의 통화를 한다. 특히 이번주는 개학을 한 첫 주라서 시간표도 바뀌고 아이들 등원 시간도 모두 바뀌는 바람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어찌어찌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 저녁이 되니 뭔가 이게 지나가면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강한 두통과 함께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모처럼의 주말인데도 아직 일 속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두통을 잊기 위해 낮잠을 자던 중에 기사님과 전화 통화를 하며 아이들 내려보낸다는 말을 하면서 잠에서 깼다. 혹시나 하고 시계를 보니 2시 50분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2시 50분이면 초등부 아이들이 첫 하원을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엉망이 된 시간표 조정을 위해 원장님과 회의를 해야해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학원 생각 않고 편하게 쉬고 싶었는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뭘 해야 속세의 걱정을 잊고 주말을 주말답게 보낼 수 있을까? 잠을 자면 또 학원 꿈을 꿀 것 같아 낮잠은 포기하기로 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메라 셔터만 누를 줄 아는 나의 카페 메뉴 촬영 도전기 (3) | 2021.04.12 |
---|---|
봄과 함께 노잼 쿨타임이 돌아왔다 (0) | 2021.03.20 |
빚 (8) | 2021.02.26 |
내 보통의 하루 (10) | 2021.02.25 |
작은 눈짓 한 번에 큰 감동 받은 날 (8) | 2021.02.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