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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by R첨지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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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 고맙게도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 중에내가 얘랑 이 정도로 친했던가?’라는 생각이 정도로 장례식장을 지켜주며 이런 저런 도움을 친구가 있었다.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없을 정도로 컸지만 마시고 좋아하는 사회인이었던 친구는 좋아하는 대학생이었던 나와 삶의 방식이나 색이 많이 달랐다. 그래서 후로도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서 어울려 노는 정도로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다. 

 

  친구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없다가도 지인들의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장례식장이나 친구들의 결혼식에는 어김없이 나타나서 특유의 허세 섞인 농담과 유쾌한 태도로 친구들에게 웃음을 줬다. 어느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을 가더라도 친구는 있었기에 그런 자리는 으례 친구를 만나는 날로 인식이 됐을 정도였다.

 

  번은 친구가 좋아하는 다른 친구와 돼지부속 구이를 먹으러 가자며 나도 데려간 적이 있었다. 돼지 부속 구이는 처음이기도 하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아서 반찬과 음료수만 깨작거리는 내게 친구는 이게 무슨 부위인데 이렇게 먹으면 고소하고 식감도 좋다면서 소금 기름에 고기를 찍어 앞접시를 계속 채워주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받아 없는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손길을, 그것도 윗사람이 아닌 동갑내기인 친구에게 받고 있자니 뭔가 얼떨떨하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친구가 그렇게 어른스러워 보일 없었다.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날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아직도 남아 있는 부속 구이 가게를 지날 때마다 친구가 생각이 난다.

 

  후로도 친구는 대학생이어서 돈이 없다는 핑계로 사준 없는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마치 막내 동생 챙기듯이 챙겨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친구에게 엄청 친근하거나 따뜻하게 대한 적이 없었는데, 나를 만날 때마다 살뜰하게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고마움보다는 의아함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친구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덕분에 전보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친구는 여전히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 나타났고 변함 없는 레퍼토리로 흘러가는 농담과 허세로 웃음을 줬다. 서로의 삶이 바쁘기 전에는 그렇게 다같이 웃고 나서 술을 마시러 갔었는데, 친구들이 어느덧 하나 결혼을 하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게 되면서 함께 뭔가를 하는 대신, 언제 같이 먹자는 형식적인 말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곤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고맙게 없이 내게 고맙기만 친군데, 어째서 나는 1년에 한 두 번씩 명절 만이라도 안부 연락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오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 전부터 몸이 아파서 누워 있다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프도록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는 미안함과 옛날에 내가 많이 챙겼으니까 아픈데 보러오라는 연락조차 하지 않은 친구에 대한 원망이 뒤엉켜 자꾸만 주위가 뜨거워진다. 사실 믿기지 않는다. 친구의 장례식장에 가서 앉아 있으면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 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특유의 허세와 농담으로 나를 웃게 만들 같다.

 

 나도 이제 맛있게 고기 구워서 친구의 밥 공기 위에 올려주며, 이게 무슨 고기고 내가 어떻게 준비해서, 어떻게 조리한 고기라서 이렇게 먹으면 맛있을거라고 있는데, 친구를 이제는 없게 됐다. 갚을 없는 빚을 마음으로 친구를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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