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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적 화자 쉽게 파악하는 방법

by R첨지 2021.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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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곡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가 즐겨 듣는 노래들의 대다수는 만드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이 나뉘어 있다. 거기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은 다시 가사를 쓰는 작사가와 멜로디를 만드는 작곡가로 나뉘는데, 한 명이 두 가지 작업을 다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사와 작곡을 따로 분담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이들은 노래를 만들면서 이 곡을 누가 불러야 노래의 분위기를 잘 살려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가수마다 음색이나 성별, 나이 등에 따라 불렀을 때 어울리는 노래가 있고, 그렇지 않은 노래도 있기 때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시를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말투나 분위기에 맞게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는 시인을 대신해서 시를 말하는 가상인 인물이나 대상을 정하는데 이를 ‘시적 화자’ 또는 ‘화자’라고 한다.

 

 화자는 시인이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나 주제에 어울리는 존재여야 한다. 예를 들어,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라는 시의 화자는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고 싶은 어린 남자아이라고 할 수 있다. 다 큰 성인이 ‘엄마야’, 나 ‘누나야’라고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적 화자는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시적 화자에 대한 단서를 잘 찾아내야 한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는 어느 정도 됐을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고, 감정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면 낯선 시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적 화자는 시의 전체적인 정서와 분위기,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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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라는 제목의 시를 함께 읽고 시적화자에 대한 단서를 하나씩 찾아보겠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없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 시는 힘들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처가 됐음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첫 행부터 화자에 처지에 대한 단서가 나타난다. 어머니가 열무를 사기 위해 시장에 가신 것이 아니라 삼십 단을 이고 가셨다는 부분을 통해, 시장에서 야채 등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2연에 ‘우리 어머니’라고 하는 대신 ‘우리 엄마’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시적 화자가 어린아이였을 때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3행부터 7행까지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어머니는 열무가 팔리지 않아 해가 떨어진 지 한참이 지나도록 집으로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럴 때마다 화자는 힘들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비 내리는 밤에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 두려움까지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화자의 어머니가 시장에서 열무를 판다는 부분을 통해서도 추측할 수 있었지만 8행의 금 간 창틈이라는 구절을 통해 시적 화자의 집이 어려운 형편 속에 있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년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훌쩍거리던’을 통해 혼자서 엄마를 기다리며 외로워하던 상황이 현재의 상황이 아닌 과거의 경험이었다는 점과 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연의 첫 번 째 행을 통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아주 먼 옛날’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는 구절은 1연에서 언급한 상황들이 아주 먼 옛날의 기억이지만 어른이 된 뒤에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고 아픈 상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시어나 구절을 단서 삼아 시적 화자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을 추리해보는 것만으로도 해당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주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앞서 예로 든 ‘엄마 걱정’이 그다지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시라고 할 수는 없다. 고등학교 문학에 나오는 작품들은 엄마 걱정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작품들이 주로 나오니 다양한 작품의 화자를 파악해보는 훈련을 통해 시적 화자를 이용해 낯선 시에 접근하는 요령을 익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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