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기

구운 거? 삶은 거? 어느 쪽일까? 새로운 방식으로 익힌 삼겹살을 맛보다

by R첨지 2021. 1. 31.
반응형

 

 본가가 시골이라 어릴 적부터 집에 손님이 오면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일이 흔했다. 어릴 때야 어른들이 구워주시고 잘라주시는 고기를 입에 넣느라 바빴지만 머리가 조금 굵어졌을 때부터는 나와 동생이 불 피우고, 고기 굽고, 자르는 역할을 고정으로 하게 됐다. 초창기엔 그냥 아무 고기나 사서 대충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먹을 수 있게만 굽는 수준이었다면,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고기의 종류나 밑간, 적당한 불의 세기와 장비들까지 점점 세밀한 사항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완성된 구이의 퀄리티와 맛도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쓸데없이 고기 부심이 좀 있는 편이다.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고기는 내가 구워서 잘라야 하고, 먹는 사람들이 흐름 끊기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고기를 자르고 구워서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별 거 아니라는 듯, "아아, 난 어렸을 때부터 많이 해서..."라고, 해야 마음이 좀 편해지는 그런 부심 말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겹살이나 목살뿐만 아니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고기들까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하고 구워내는 유투버들의 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고기 남자라는 유투버가 내 견문의 협소함을 깨닫게 한 대표적인 유투버인데, 최근에 냄비로 수육용 삼겹살을 정말 맛있어 보이게 구워 먹는 영상을 보게 됐다. 그런데 이게 또 완벽하게 수육용 삼겹살을 구웠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그 영상에서 고기 남자는 삼겹살을 굽는 동시에 삶기도 했다. 오늘은 부추전을 만들어 볼 계획이었으나 고기가 더 먹고 싶은 날이었기에 고기 남자가 영상에서 소개한 방법대로 수육용 고기를 굽고 삶아봤다.

 

요리 못하는 사람들이 꼭 지저분하게 한다.

 

 재료는 수육용 삼겹살과 통마늘, 그리고 로즈마리와 버터인데, 집에 로즈메리는 없어서 아쉬운 대로 월계수 잎을 준비했다. 재료는 이게 다였다. 제일 먼저 할 일은 고기에 소금을 골고루 뿌린 후에 20분 간 실온에 두는 것이었다. 삼투압 현상으로 수분이 빠져나오게 하는 거라고 하니 알람까지 준비해서 똑같이 따라 했다.

 

 

 20분이 지난 후에 삼겹살 표면에 수분을 제거해주고, 깊이가 있는 냄비에 아무 기름이나 두르고 가열하고 나서 중불로 비계 부분부터 차례대로 1분가량씩 구워준다.

 

치이익 소리가 황홀하다.

 

 양 옆도 잊지 않고 구워야 한다. 모든 면을 노릇하게 구운 후에는 불을 약불로 줄이고, 냄비 뚜껑을 닫고 20분 정도를 삶아줘야 한다.

 

 

 삶는다고 해서 물을 더 넣거나 하지는 않고, 냄비 안에 생기는 수분으로 쪄내는 원리라고 한다.

 

 

 이 때, 틈틈이 뚜껑을 열고 고기를 뒤집어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분이 지나면 고기의 풍미를 더해 줄 버터와 잡내를 잡아줄 마늘, 그리고 월계수 잎을 넣고 10분간 더 익혀줘야 한다. 물에 삶는 것과 달리 계속 고기를 뒤집어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그 정도의 수고가 아깝지 않은 맛이 난다. 영상 속에서는 고기를 굽고 남은 기름에 김치까지 구워냈지만 마침 집에 김치가 똑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고기만 먹어야 했다.

 

 

 쌈장과 쌈무를 준비하고 적당하게 먹기 좋은 크기로 고기를 잘라서 맛을 봤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먹어 본 그 어떤 고기에서도 맛보지 못한 식감과 맛에 깜 짤 놀랐다. 나도 모르게 "아니 어떻게 수육용 삼겹살에서 이런 식감이 나지?"라는 말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소고기 같은 맛과 식감은 아닌데 뭔가 수육용 삼겹살의 잠재력을 한껏 끌어올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잡내도 없었고, 고기는 쫄깃하고 부드러웠으며, 간도 딱 적당했다. 냄비와 수육용 삼겹살, 마늘만 있으면 누구든 만들 수 있으니 한 번쯤 따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