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2시 40분 쯤 출근하면, 퇴근하는 10시까지 세 번에 나눠서 몰려오는 정신없는 일의 파도가 친다. 전반적인 관리 업무와 수업을 동시에 맡고 있다보니 아이들의 출결과 운행을 챙겨야 하고 혹시 변동 사항이 있거나 잘못되는 부분이 있으면 운행 기사님과 학부모님, 혹은 아이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 째 파도는 초등부 수업이다. 초등부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매력과 개성이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몇 십명의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며 동시 다발적으로 또는 반복적으로 “어디 앉아요?, 화장실 가도 돼요? 물 마셔도 돼요?, 영어 언제 해요? 이거 모르겠어요. 집에 언제 가요?…”등등 끝도 없는 질문과 요청을 쏟아내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나의 시험에 빠지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목에 핏대를 세우고“제발, 한 명씩 천천히 물어보면 안될까?” 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목 끝까지 올라오지만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화를 내게될까봐 매 번 속으로 삭히고 만다.
많이 움직이고 많이 말하고, 그 와중에 기사님이나 학부모님, 그리고 학생들과 전화 통화도 해야하는 초등부의 파도가 끝나고나면 초등부에 비해서는 덜 바쁘지만 좀 더 엄숙한 분위기의 수업에 비중을 둬야하는 중등부 파도가 시작된다. 중학생들은 초등부 아이들보다 통제가 쉽고, 수업 태도도 정돈 된 느낌이지만 그만큼 진지하고 심도 있는 수업을 해줘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강은 없다. 만약 내가 공강을 갖게 되면 다른 선생님들이 그만큼 버거워지기에 혹시 아이들이 빠져서 공강이 생기게 되면 다른 아이들 보강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을 제일 많이 쓰는 시간도 중등부 시간이다. 계속해서 뭔가를 설명하거나 질문에 답해주거나 소리내어 읽어주려면 목을 보호하기 위해 물을 수시로 마셔줘야 한다.
중학생들 수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갈 때 쯤 마지막 파도의 주인공인 고등부 아이들이 학원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학원에 있는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중학교 때부터 함께 공부 했던 아이들이라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 학원에 오자마자 내 표정이나 기분부터 체크를 하고, 그 날의 분위기에 맞게 행동한다. 수업도 크게 힘들 것은 없다. 설명할 내용들이 중등부 아이들의 내용보다 어렵고 복잡하기는 해도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아이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부라서 익숙하고 잘 아는 건 빠르게 건너뛰고, 기억을 못하거나 새로운 내용 위주로 설명을 한다. 고등부 시간에 크게 힘이 든 일은 없지만 초등부 중등부 시간에 워낙 진이 빠진 상태라서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상태로 수업을 진행하곤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쉬는 시간이나 밥 시간을 따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때로 운이 좋게 전 시간에 설명을 다 해놔서 문제를 풀이 위주로 수업을 하게 되면 나는 아이들이 딴 짓하지 않고 문제를 잘 푸는 지 감독을 하며, 질문에 답만 하는 때가 오기도 하는데, 그 시간이 내가 공식적으로 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은 보통 중등부 아이들 수업이 끝나가거나 고등부 아이들 수업이 시작되는 때 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편의점에서 파는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미리 준비해 놓고 아이들이 본문을 읽거나 문제를 푸는 시간을 이용해 먹곤 한다. 맛을 느낄 여유가 있을 리 없으니, 식사라고 하기는 힘들고 보통은 인스턴트 음식을 입으로 밀어넣은 후 대충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기는 수준이다. 그래서 맛보다는 간편함과 양, 가격을 따지게 되는데 요즈음은 CU에서 파는 유부 초밥을 즐겨 먹는다. 3,800원에 제법 묵직한 크기의 유부 초밥 다섯 개가 들어 있고, 각각의 초밥에는 연어 조각이 양파 크림 소스와 함께 올라가 있다. 5분만에 식사를 마치면 쉴 새 없이 꼬르륵거리던 허기를 달랠 수 있을 정도로 든든하다.
저녁을 먹는 시간이 보통 7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학원 마지막 수업도 9시에 끝나기에 집이 먼 아이들 운행까지 마치고 나면 10시 30분에 집에 도착해서 쉴 수 있다. 하루가 긴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지치는 느낌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잠드는 시간은 새벽 2시. 잠들 때 드는 생각은 둘 중 하나다. 평일엔 왜 내일이 주말이 아닌가에 대한 한탄, 금요일엔 드디어 내일 쉴 수 있다는 기쁨…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ing) 리뷰 (4) | 2022.04.13 |
---|---|
5555원과 4444원 통장 (2) | 2022.03.22 |
아이폰으로 찍은 1월의 사진들 (2) | 2022.01.19 |
2021년이 간다. (0) | 2021.12.31 |
허전함에 대하여 (0) | 2021.10.24 |
댓글